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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학교는 운동장도 있고 학교도 컸는데 프랑스 학교는 왜 이렇게 작고 운동장도 없나 궁금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제가 다닌 학교와 너무나 닮은 곳을 프랑스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운동장도 널직하고 교단도 있고, 들어가는 입구에 수위실도 있어요. 거기가 어디였는지 아세요? 군사학교였습니다. 그때 좀 멍했습니다.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군국주의 일본이 어떤 목적으로 학교를 설계했을까, 사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국가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신민을 만들기 위해서는 군사학교가 제일이죠. 게다가 식민지 백성인데 말할 것도 없잖아요. 일본 궁성을 향하여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절을 하게 하고, 일직부터 총알받이를 만들기 위한 군사훈련을 시키고...... 국가주의 교육을 철저하게 관철시키려면 이런 과정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어요.
문제는 1945년에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후 1948년 이른바 민주공화국을 선언했으나 그것이 그야말로 선언에 불과한 허깨비였다는 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제 부역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일제 때야 아이들을 사유하는 주체로 기를 이유가 없었죠. 기계적으로 충성하는 존재만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민주공화국을 선언했다면 적어도 주체를 형성하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게 사라졌어요.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인류 역사 발전 과정을 통해 획득한 정신, 가치체제의 성과물을 가져왔으나 내용은 전혀 없이 껍데기만 가져온 거죠. 그러다 보니 민주공화국 학교가 되지 못하고 군국주의 학교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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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평가가 100점 만점이잖아요, 프랑스는 20점이 만점이에요. 그리고 대학입학자격시험에서 10점이 합격선이기 때문에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시키고 평가하는 기준도 10점입니다. 실력이 좀 모자란다 싶으면 7, 8점이고 좀 잘하면 12, 13점인 거죠. 그 역사 선생에게 "우리는 100점이 만점이었다"고 하니까 저보고 "너는 몇 점 받았나"고 물어요. 그래서 "나 공부 잘했다. 94점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100점 만점에 94점이나 받았다고?"라면서 놀라요. 그러면서 "그럼 너보다 잘한 학생은 95점이고, 더 몬한 학생은 93점을 받았다"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도통 이해를 못 하고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희한하다. 너희 역사 선생님은 너의 역사 보는 안목을 그렇게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느냐."
할 말이 없더라고요. 우리가 받는 점수는 역사를 보는 안목과는 전혀 상관없잖아요. 묘청의 난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 기묘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난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이런 객관적인 정보를 입력시켰냐 아니냐를 보여 주는 것뿐이잖아요. 인문사회과학의 경우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차이는 하나예요. 시험 본 뒤에 잊어버리느냐, 시험 보기 전에 잊어버리느냐. 언젠가 잊어버리는 건 마찬가지죠. 그런데도 이것으로 평가된다는 겁니다. 사유하는 인간이 아니라 암기하는 기계들이죠.
결국 암기를 하느냐, 글쓰기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 핵심이라고 봐요. 학교에 우리 아이들의 글쓰기가 살아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 아까 역사 선생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제가 이 친구에게 "너희는 역사 공부를 왜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해요. 역사를 통해, 역사 공부를 통해 알아야 하는 게 부끄러움이래요. 그때 받았던 충격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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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9일, 홍세화 선생님의 강연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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