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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문화다방 / 2부 - 박기태, 작은 차이의 큰 차이를 말하다

아상블라주 2011. 10. 22. 13:56

 



숨 죽이며 지켜본 마임 뒤에 이어진 강연.

강연자가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옷을 벗어야하나요?'

라며 농담말을 던진다.



이렇게 수다쟁이 아줌마같던 박기태 씨의 강연이 시작됐다.








 


그의 말을 듣기 전에 과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펴볼까?



 

▷ 1999년,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VANK) 설립

▷ 국가홍보분야 대통령 표창, <한국을 움직이는 101인> 선정

▷ 해외 650만 한인동포 인적 네트워크 구축사업, 사이버 독도 사관학교 설립

▷ 서울시 홍보대사, 국가 이미지 개발위원회 위원

▷ 김장훈과 함께하는 독도페스티벌 개최

▷ 한국정보 오류시정 프로젝트 사업 / 전국민 사이버 외교관 양성사업 / 검색엔진 구축 등

 




약력이 제법 긴 걸 보니 뭔가 대단한 사람 같긴 하다.

오르기 힘들다는 '~~~하는 101인' 이런 약력도 있네?

그럼 대단한 사람이 우리에게 자기자랑하려고 강연하는 건가?



하지만 막상 그의 과거를 들어보면

그때의 그와 지금 우리의 모습은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 그는 명문대도 아닌 야간대학을 다녔고, 취업을 위해 죽어라 토익만 했다

▶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을 알리는 VANK의 시작은 사실 학교 과제용 개인 펜팔사이트였다

▶ 남들이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다섯 번이나 직장을 옮겨다녔다

▶ 그러는 동안 반크의 일은 직장을 다니면서 하는 부수적인 일에 불과했다

▶ 대학생활을 하면서, 남들이 하는 공모전, 대외활동이 아닌 그냥 빌딩에서 청소하는 '알바'를 했다

 




이런 그가 1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이렇게 대단하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이 됐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그는 큰 차이에 집중하기보다는

작은 차이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지난 삶을 통해 작은 지혜를 얻고 싶으시다면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끝까지 읽어보시길.

(왼쪽 밑에 있는 그의 10년 살펴보기를 눌러주세요!)


더보기

이제 그가 얼렁뚱땅 시작한 10년전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자.



때는 1997년, 화자가 갓 제대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대한 그의 가장 시급했던 과제, 취업.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제는 교과서에까지 나오는 사건인 IMF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맙소사.


앞 학번 선배들조차 취업을 못해 우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학력도, 빽도, 돈도 없던 그가 발버둥치며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토익뿐.

그는 요즘의 젊은이보다도 더 악착같이 토익에 임했지만 돌아오는 건

오르락내리락하는 점수에 따라 자신의 기분도 오르락내리는 일이었다.


거기에다가 가정형편상 학비와 생활비까지 자신이 마련해야했다.

나중에 취업에 도움이 될만한 기업 인턴이라도 되고 싶었지만

100통이 넘는 지원서를 내는 족족 다 떨어지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폼나는 이력 한 줄이라도 적어보고자

유명 영화제에 자원봉사활동에 지원을 했는데 그마저도 떨어졌다.


오호통재라. 내가 외모가 혐오적인가 아님 말을 더럽게라도 하나.

혹시...... 학벌 때문인가?


제 능력 부족 관계로 문화다방 글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