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밝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여쭤보니 아들이 매일 전화해줘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러고보니 새해 들어 운동 갈 때마다 습관처럼 연락드렸다.
그게 새삼 반가우신 모양이다.
여러 지인들의 추천에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 특유의 가족 사이를 끈끈히 묶는 '정'의 과장 없는 표현에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견딘다는 것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다.
'어른들은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다.
어른으로서의 일들에 바빴을 뿐이고, 나이의 무게감을 강한 척으로 버텨왔을 뿐이다.
어른도 아프다.'
그리고 부모도 외롭다.
부모님은 기다림에 익숙하다.
익숙하다고 쉽다는 건 아니다.
행여나 자신의 그리움이 자식에게 누가 될까 조심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고 항상 멀리서 기다리신다.
나이가 들면서 당당해지기보다는 눈치를 봐야할 데가 점점 많아진다.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에 누군가가 먼저 자신을 찾아주는 이가 있으면 누군들 반갑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그 사람이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식이라면 말이다.
하루에 오 분.
짧지만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의 틈을 벌려 꽃을 수놓기에는 충분하다.
나에게는 시덥잖은 일상 이야기도 부모님은 알고 싶고, 듣고 싶다.
그런 분들 앞에서 각박한 세상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갑옷을 벗어던지고 아이로 돌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백만금이나 집안의 명예보다도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따스한 체온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