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일어나 씻고 짐 정리를 했다.
애쓴 만큼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오후엔 피곤하겠지만 버스에서 자면 되겠지.
Jimmy와는 마지막이라 포옹으로 배웅했다.
다시 그와 연락할 날이 오지 않을까.
Zofia와 함께 시내로 나가는데 그녀가 갑작스런 질문을 했다.
어떻게 교육 제도를 바꿀 거냐고.
깜짝 놀란 나의 표정에 Jimmy가 어제 나에 대해 말해주었다고 했다.
한참이나 그녀와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이미 10년의 교직 경험이 있고, 현재는 학교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그녀가 겪은 폴란드 교사는 한결같이 태도가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거기에다 흥미롭지도 않아 학교가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께 우겨서 당시 폴란드에 하나 밖에 없는 대안학교로 진학했다고 한다.
그나마 그곳에서의 생활은 공교육보다는 나았다고.
앞으로는 중국이나 캐나다에서 근무하며 경험을 쌓고 이후에는 교육 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오전 9:43 Map
그녀가 내 나이를 물어보길래 대답해주니 깜짝 놀랐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23살 정도쯤 된 줄 알았다며.
어린 나이에 생각이 깊다고 여겼나보다.
오히려 그녀가 나보다 한 살 어린데.
이렇게 호평을 받으니 유럽에서 살아야겠다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오전 9:44 Map
내가 선생님이었을 때 경험을 들려주니 매우 흥미로워하며 페이스북과 카우치서핑에서 친구로 등록해두라고 했다.
언젠가 같이 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쉽지만 그녀도 나도 따로 일정이 있는 상황.
그녀가 헤어지며 폴란드에 올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주라고 했다.
가고 싶은 나라가 하나 늘어났다.
오전 10:23 Map
Zofia와 헤어지고 노르웨이 적응 준비로 분주했다.
피요르드에 올라갔을 때를 대비해 옷 한 벌 더 사고 현금 인출하고 먹거리 사고.
안타깝지만 같은 모바일 회사라도 스웨덴 심카드에는 추가로 돈을 충전할 수 없다고 한다.
한 번 인터넷 없이 다녀보자.
중간에 만난 트롤 조형.
이곳에서는 트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우리로 치면 도깨비와 비슷한 인식이랄까.
큰 주류판매점이 있길래 들어가봤다.
노르웨이는 술과 관련된 정책이 엄격하다.
높은 도수의 주류는 정해진 곳에서만 팔고 그마저도 일정 시간에만 판매한다.
술에 취한 채 충동구매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 날 유일하게 들린 관광지는 Oslo 시청이다.
시청 주변에는 유명한 사람이 아닌 이름 없는 시민의 동상이 가득하다.
훤한 시청의 내부다.
이곳에서 노벨평화상을 시상할까?
공간감을 표현하려 일부러 빈 곳을 찍었을 뿐 관광객이 어마어마했다.
시청 안에 한국어로 된 책자가 있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시청에서 바라본 시청광장의 모습.
배는 고픈데 버스 시간을 얼마 안 남아서 마음이 급해졌다.
식사할 만한 곳을 찾는데 맥도날드, 버거킹 등 다국적 프렌차이즈만 보였다.
괜히 가기가 싫어 다른 데를 찾다 케밥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
무척 친절한 아저씨가 웃으며 반겼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혹시 북한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니 당연히 그럴거라며 웃으셨다.
오후 1:21 Map
바쁜 걸음으로 터미널에 도착했다.
승강장까지 찾았는데도 30분이나 남았길래 여유롭겠다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도착했다.
결국 케밥을 다 못먹고 출발!
7시간 50분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오후 2:02 Map
순록 그림에 빨간 테두리의 교통 표지판이 보였다.
야생 동물 출현을 뜻하는 거겠지?
오후 2:31 Map
여기저기에서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땅이 넓은 만큼 규모도 크다.
오후 5:05 Map
Wifi가 잘 된다는 광고와는 달리 Oslo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긴 시간 동안 차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살아온 날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정리했다.
가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도 볼 수 있었지만 사진으로 담아두기에는 너무 빨랐다.
남부 항구 도시 Kristiansand에서 45분간 정차한다고 했다.
어차피 이틀 뒤에 다시 찾을 곳이라 간단히 둘러보고 먹거리를 사려 했는데 The Tall Ships Races라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찾은 배가 제각기 위용을 뽐냈다.
사람도 제법 많았다.
물론 노르웨이의 인구를 생각해보면 제법이라고 해도 얼마 되지는 않는다.
오후 6:43 Map
한 해양대에서도 참가했나보다.
같은 제복을 입은 이가 배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나는 음악이 울려퍼져도 조용한 노르웨이 사람들.
갑자기 산 중턱에서 버스가 멈췄다.
사고가 났나 보다.
몇 사람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오후 7:44 Map
도착할 즈음이 되자 남은 바나나를 마저 먹었다.
버스를 탄 동안 바나나를 8개나 먹었다.
이러다 원숭이 될라.
버스에서 내렸는데 정류장이라고 하기에는 도로 한복판이다.
인터넷도 안된다.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야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린다.
가는 길에 만난 자동제초기.
자동청소기를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듯 했다.
이곳에 오니 갑자기 우리나라 기업의 차가 많이 보인다.
오후 8:30 Map
서너 명에게 물어보며 힘들게 시내에 도착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작은 도시, Mandal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라고 했다.
여름 휴가에 배를 타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정갈하고 아름답다.
호스트가 알려준 식당으로 찾아가 한 종업원에게 대뜸 Patrick을 찾아왔다고 물었다.
그가 이미 이야기를 들었다며 Patrick에게 데려다주었다.
금발을 뒤로 묶은 훤칠한 청년이 웃으며 나를 맞았다.
Patrick은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이곳 식당에서 경험이 상당하다.
그는 스웨덴인이고 이번 여름 휴가 기간 동안에만 이 식당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일어나면 일하러 나가 밤 늦게 집에 들어오는 생활을 두 달째 하고 있다고 했다.
잠시 집을 안내해주더니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그가 묵는 집에는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끼리 같이 지낸다.
모두 여섯명인데 그를 포함한 네 명은 스웨덴 출신이고 나머지 둘은 폴란드 출신이라고 한다.
오후 9:17 Map
Patrick이 떠나자마자 나도 먹거리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이미 마켓은 문을 닫아 있었고 문을 연 식당은 가격이 비쌌다.
어쩔 수 없이 점심에 그렇기 기피했던 버거킹으로 들어갔다.
돌아와서 보니 봉지 안에는 햄버거 두 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뭐지.
내가 두 개를 구입한건가, 불쌍해서 하나를 더 넣어준건가.
오후 9:19 Map
열한 시가 넘어 Patrick이 돌아왔다.
피곤할 법도 한데 노래를 흥얼거리며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와 다른 여직원 Frida, 그의 남자친구 Erik과 함께 맥줏집로 갔다.
각자 잔을 들고 자리에 앉았는데 신기하게 생긴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물어보니 주크박스라고 했다.
돈을 넣고 원하는 곡을 누르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새벽까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과 교육, 게임, 가족 등 주제는 무궁무진했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함께 흥얼거리며 장단을 맞추기도 하고 깔깔대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Erik이 스웨덴은 참 좋은 나라라고 자찬했다.
장난끼가 돌아 스웨덴에서 계속 살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자신에게는 너무 틀에 짜인 것처럼 막혀 있고 지루하다며 남부 유럽으로 옮기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 기간이 끝나면 뭘 할거냐는 내 질문에 장난끼 많은 Patrick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Save the world.'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그건 중요치 않다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영향력을 넓히면 된다고 답했다.
제멋대로 살면서도 뜻이 있는 Patrick.
커피를 마셔도 술에 취한 듯 현재를 즐기는 Frida.
속이 깊으면서도 재치 넘치는 Erik.
그들과 함께 조용한 새벽길을 웃음으로 채웠다.
소파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봤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괴짜들이 이리도 많구나.
그들을 연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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