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유럽에서 살다

<40일차> 여행인가 인터뷰인가

아상블라주 2015. 7. 25. 23:30


아침 일찍부터 나갈 채비를 했다.

그동안 익숙해진 곳을 떠나려니 허전한 기분이 든다.

Jens가 차려준 스파게티를 챙겨먹은 후 내가 머무른 흔적을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떠나는 길,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오전 8:46  Map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끼이익하는 마찰음이 나자마자 쾅 하고 버스가 흔들렸다.

급정거한 차에서 한 남성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버스를 향해 다가왔다.

버스기사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오전 9:02  Map



대부분의 승객은 버스에서 내려 근처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어느 누구 하나 따지거나 소리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사고 처리 과정이 궁금했지만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사람들의 걸음 속으로 들어갔다.


많은 승객이 한 트램으로 갈아타길래 따라서 탔다.

여기가 어딘고.

한참을 헤매 중앙역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SWE버스를 타는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직원들에게 물어물어 찾았다.

어제 Jens가 조언한 대로 일찍 나오지 않았더라면 고생하고도 버스를 못탔겠다 싶다.

오전 9:39  Map


승객이 너무 많다며 Oslo로 갈 사람은 옆 버스로 옮겨 타라고 했다.

오늘 뭔가 이상하다.

오전 9:49  Map


이동하는 동안 몇 사람에게 숙박 요청을 보냈다.

이미 일주일 간의 계획이 잡힌 상황이다.

중간에 비행기를 예약하니 일정 잡기가 수월하다.

텅 빈 도화지만 쳐다보다가, 그려진 밑그림에 색칠하는 기분이랄까.

둘 다 매력이 있다.

오전 11:32  Map



스웨덴-노르웨이 국경 부근인데 절경을 종종 마주친다.

디지털카메라를 짐칸에 둔 게 한이로구나.

오전 11:50  Map



드디어 노르웨이의 수도 Oslo다.

겸손한 건물만 보다가 서로 누가 높은지 자랑하는 빌딩을 보고 있자니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오후 1:27  Map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호스트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갑자기 한 여성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검사관 명찰을 보여주더니 꼬치꼬치 캐묻는다.

어디서 왔느냐, 며칠간 머무르나, 어디서 묵을 거냐, 돈은 얼마 있느냐, 가방에 든 짐은 뭔가.

하. 안 그래도 정신 없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니.

오후 1:37  Map



Oslo 터미널 입구의 풍경이다.

사람이 가득하다.

북유럽에서 이런 풍경은 처음 본다.

대부분이 관광객인 건가.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Jimmy가 버스정류장까지 마중나와 있었다.

그는 한국인이며 노르웨이에서 석유 관련 엔지니어로 수 년째 지내고 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근사한 음식점에서나 나올 법한 음식을 차려 주었다.

요리하는 동안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무척 능숙했다.


이때부터 우리의 7시간에 걸친 수다가 시작되었다.


첫 주제는 Couchsurfing이었다.

Oslo가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만큼 하루에도 수 차례나 요청을 받는다고 했다.

처음엔 아무나 수락했지만 몇몇 몰지각한 사람을 만난 후로는 가려서 받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9월 초까지 거의 매일 손님이 오기로 되어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 등이 들어가 이후로는 줄이려고 한다고 했다.

그의 집 상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스웨덴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노르웨이에 직장을 구하며 정착했다고 했다.

그렇게 된 이야기가 참 길었지만 인종차별이 가장 큰 이유였다.

스웨덴은 노르웨이보다 차별이 심하다고 했다.


최근 이민계를 한다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자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자세가 아닌 이상 어려울 거라고 딱 잘라 말했다.


최근 추세처럼 노르웨이 역시 보수당이 집권했다.

스웨덴 역시 보수당이 집권한지 제법 됐지만 아주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스웨덴의 의회에 극우파가 들어섰지만 아직까지 노르웨이에는 없다고 한다.

의원과 장관 중 여성의 비중이 반이나 된다고 했다.


학교나 부모 차원에서 고등학생에게조차 학업에 대한 압박감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등교 모습을 보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고 했다.

교사 역시도 점점 학생들을 다루기 어려워진다고 말한다고 했다.

한국을 경험한 자신의 입장에서는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노르웨이의 문화는 무척이나 느긋하고 여유롭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북유럽 중에서도 가장 특출난 것 같다고 했다.

직장에서 연장근무가 없음은 물론이고 회사 사정이 급해도 휴가를 떠난다고 했다.

자신은 Work hard를 연장근무라 생각하는 반면 이곳은 더욱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며 아직까지도 문화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고 했다.


노르웨이는 유전과 관련된 사업으로 6~70%의 수입을 올린다.

최근 저유가로 인해 경제 사정이 나빠졌지만 실업률은 3~4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월급 등 차별이 거의 없지만 인사조정이 있을 시에 비정규직이 가장 먼저 퇴출되고 경력이 낮은 순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의 수입은 평균소득보다 훨씬 높지만 세금은 35% 정도만 낸다.

덴마크와 비교하면 적은 수치다.

노르웨이는 중산층의 비중이 매우 높다.

사회경제적으로 균질하게 때문에 괄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부정부패가 적다는 것이 많은 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지내는 것에 무척 만족해했지만 두 가지가 걸린다고 했다.

그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의료서비스가 낙후됐다는 점이다. 

이곳은 덴마크처럼 주치의 제도에 강한 의료보장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덕분에 연간 일정 금액 이상의 진료비는 국가가 모두 지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동네병원에 있을 만한 장비가 노르웨이는 대학병원에서야 받을 수 있다. 

간단한 진료라도 며칠을 기다려야 하고 수술 등은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의 경험으로는 한국에서 손 쉽게 받은 치료도 노르웨이에서는 일 년 이상을 끌었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로는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자신 역시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함에도 일 년 내내 자극이 없으니 너무 무료하다고 했다.

대도시의 유명한 술집에서도 나이트 클럽 수준의 소란스러운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서로 이야기만 나눈다고 했다.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기는 힘들다고.

내성적인 스칸디나비아와 외향적인 남부 유럽의 차이가 극명하여 서로 만나면 편하지 않다고 했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가 배가 고파져 간단히 핫도그를 먹었다.

각자의 학창 시절의 경험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들려준 일화는 노르웨이와 한국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노르웨이 가족이 싱가폴에 몇 년간 지내게 됐다.

자녀가 다닌 국제학교는 한국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싱가폴은 한국만큼 교육 강도가 강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자녀가 싱가폴의 교육과정을 따라잡느라 울상이었던 반면 한국 학생은 수월하게 적응했다고.


그에게 자녀를 낳으면 한국과 노르웨이 중 어느 곳에서 교육을 시킬 거냐고 물었다.

노르웨이에서 지내다 한 두 해는 한국에서 지내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세계에서 가장 널널하게 교육하는 나라와 가장 교육열이 높은 나라를 경험하게 하여 자녀의 인식 지평을 넓혀주고 싶다고 했다.


이런 진지한 이야기 말고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지만 여기까지만 정리하려 한다.

다 적으려면 책 한 권이 나올 것 같아서.

나 여행하는 거니, 인터뷰하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