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유럽에서 살다

<32일차> 내 멋대로 여행하기

아상블라주 2015. 7. 17. 23:43

여유롭게 나갈 채비를 마쳤다. 

생각치도 못한 식기류로 혼란을 준 호스텔이여, 안녕!

오전 9:44  Map



새 한 마리가 동상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세수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물을 마시나 했는데 몇 번이나 얼굴을 씻고 털기까지 했다.

특이한 취향을 지닌 녀석인가 보다.


덴마크 크로네는 우리 돈으로 환전이 어려워 다 쓰고 가자는 생각에 Copenhagen 카드를 현금으로 샀다.

그런데 오늘 숙소는 현금만 받는단다. 

침구류를 빌리기엔 10크로네가 부족하다.

왜 카드를 안 받는거니. 

우선 짐을 맡기고 체크인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10크로네를 어디서 구해야하나 걱정이 됐다. 

1500원 정도라 ATM에서 인출하기에는 너무 적은 돈이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달라고 할 수는 없고. 

그래, 가지고 간 책갈피를 누군가에게 팔아보자. 

후후. 저녁이 기대된다. 

오전 10:41  Map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릴 곳을 놓쳤다. 

그 덕분에 우연히 Rogenborg 성에 갈 수 있었다. 

성이야 워낙 자주 봐서 큰 감흥이 없었지만 그 앞에 큰 정원과 공원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내일 실내에 들어가봐야겠다. 



위병 교대식이 있는 정오에 맞춰 Amelienborg 성으로 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나 보다. 

시간에 맞게 근엄한 표정의 위병이 걸어오는데 경찰이 그 주변을 호위하며 관광객들을 정렬싴키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연출됐다.

그러고보니 군인을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에게는  큰 볼거리는 아닌 것 같다. 

복장이 유럽식이고 보는 눈이 많으니 더욱 절도가 있을 뿐. 

 

현 왕실이 사용하는 Amelienborg 성은 일부를 박물관처럼 운영한다. 

얼마 되지 않는 공간이라 전시된 것은 적지만 흥미로웠다.




실제로 쓰는 곳은 저리 복잡하진 않겠지.

각 방마다 지난 왕들이 썼던 물건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삶을 돌이켜 봤다.

사는 동안 그들은 행복했을까.



1964년, 그리스 왕자와 덴마크 공주가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이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이다.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그들은 하나의 동화같은 사랑의 모델로 자리잡았다.

오후 12:33  Map


얼마 다니지도 않았건만 다리도 아프고 걷기도 싫었다.

자꾸 어딘가에 걸터앉아 쉬었다.

바쁘게 돌아다닐 필요가 있는가.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쉬는 거지.


왕립도서관, 속칭 Black Diamond를 찾았다.

바다 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전면에 일렁이는 파도에 부딪혀 부서진 햇빛이 반사되어 비친다.

그 모습이 마치 다이아몬드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외관만큼 실내도 훌륭하다.

투명한 유리로 보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곳곳에 테이블이 널찍하게 있었고 가구도 천편일률적이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한약방 같은 고서가 놓인 장소.



평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젖어들고 싶었다.



영어도 잘 모르면서 허세가 가득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나 덴마크 왕립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남자야!



왕립도서관과 그 옆의 돔 형태의 식물원이 어울리게 사진을 찍어 보려고 했지만 각각의 매력이 살아있지 않다.

역시 과욕은 금물이다.



식물원 앞에 있던 데크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어제 내가 타고 다닌 Canal이 관광객을 가득 태우고 내 앞쪽으로 왔다.

내가 어제 데크에 누운 사람들이 편안해보인 것처럼 그들도 나를 그렇게 봤을까.

그건 모르겠고, 나는 지금 만족한다.



한 군데만 더 가보자 하고 의회로 갔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한 건물에 있다고 했다.

박물관을 찾다가 정원이 보이는 곳에 앉아 사람을 살폈다.

오늘은 더 이상 다닐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냥 숙소로 가자.


숙소로 가는 중 생각해보니 예약할 때 보증금을 지불한 기억이 났다.

다행히 보증금에 내가 가진 현금을 더하니 숙박비와 침구류 대여비가 나왔다.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는 사라졌지만 마음이 편해지더라.


덴마크에 흔치 않은 대형마트가 숙소 가까이 있어 한 번 가봤다. 

다양한 즉석식품에 쾌재를 불렀다. 

더군다나 영업 마감시간이 다가와 할인까지 하고 있었다. 

무얼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소고기감자 볶음을 샀다. 

싸고 양도 많은데 다 먹기에는 너무 짰다.

우유와 함께 먹는 것도 한계가 있지. 

요즘 북유럽 음식이 대세라는데 본고장까지 와서 왜 이러는 거니.

내일은 괜찮은 식당에 가볼까.

오후 5:16  Map


Copenhagen 사람들끼리 영어로 소통하는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MeetUp'이라는 어플 덕분에 가능했다.

내 성미에는 관광보다 이게 좋다.

오후 6:48  Map


여행 후 처음으로 바에 갔다.

술과 밤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들으면 한숨 나올 말이다.


영어 모임이라 그런지 덴마크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덴마크인은 물론이고 미국, 독일, 스페인, 러시아, 필리핀, 칠레, 우크라이나 등 다양했다.

여러 나라의 사람이 모이는 Copenhagen 답다.

여행에 와서 이 모임에 참석했다고 하니 깜짝 놀랜다.

하긴, 누가 여행 가서 모임에 참석을 하나.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해서 그 모든 것을 담기는 어렵다.

가장 관심이 갔던 대화를 요약하자면 이민자가 덴마크에서 직장과 집을 구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

특히 직장은 아는 사람이 추천해주지 않으면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다들 덴마크는 살기 좋은 나라라며 나보고도 오라고 했다.

나도 잘 안다.

Zeeshen이 말한 것처럼 순간의 행복이 아닌 긴 만족이 가능한 나라, 덴마크다.


스무 명 가까이 있다가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일어나 결국 나를 포함해 7명만 남았다.

바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Ferit이 덴마크의 '불금'을 확인해보면 재밌을 거란 말이 떠올랐다.

시간이 늦어지니 DJ까지 등장해서 소란스러워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피곤하기도 해서 먼저 돌아가겠다고 일어섰다.

버스야. 와라. 얼른 자자꾸나.

오후 10:49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