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유럽에서 살다

<30일차> 자세히 바라보고 오래 기억하기

아상블라주 2015. 7. 15. 23:30

간밤에 Zeeshan이 하수구를 뚫어 두어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상쾌해진 몸으로 어제 여행기를 마무리했다.

여러 핑계를 대며 기록을 미루면 기억이 희미해진다.

사정에 맞게 짧게라도 적어두자.


오랜만에 여행기를 올리니 속이 시원하고 하나 해낸 것 같은 기분이다.

카우치 서핑을 통해 몇 사람에게 숙박 요청을 보내고 토요일까지 호스텔을 예약했다.

여행 일정을 정비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이제 새로운 곳으로 떠날 때가 됐다.



집을 나서기 전에 Jens와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자신의 기록 정리를 보여주었다.

나와 나눈 메일과 메시지,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까지도 적혀 있었다.

그가 스스로 만든 연락부와 각종 자료 분류법, 문서 처리까지 보고 있자니 저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의 성실함에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 번 기록의 소중함을 떠올렸다.



푸른 빛깔의 자개로 나비를 새긴 손거울을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보통 여성이 쓰는 물건이지만 어울릴 것 같다며 건내자

자기가 써도 좋을 것 같다며 해맑게 웃었다.


마음에 깊게 새긴 꿈은 노력이 지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 그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언제든 어떤 책이 좋은지 물어보라며 밝은 미소로 그가 대답했다.

Jens와 Zeeshan, Deo, Ferit.

안녕!


Copenhagen 시내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자동표판매기가 보이지 않았다.

기차가 도착할 즈음에 건너편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우선 기차를 탔다.

한 정거장 가는 동안에도 계속 불안하고 불편했다.

얼른 Copenhagen 카드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중간에 관광정보센터가 있는 역에서 내렸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카드를 사면 공짜인 것을 돈을 내자니 못내 아쉬웠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 보단 낫겠다 싶어 표를 구입했다.

대중교통비가 엄청 비싸긴 하다.

25분 이동하는데 8천원이라.

오후 3:03  Map



Copenhagen 중앙역 근처의 큰 관광정보센터로 갔다.

무료 와이파이에 연중 무휴란다.

시설도 깔끔하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72시간 짜리 Copenhagen 카드를 결제하고 돌아서는데 직원이 나를 불러 카드도 챙겨가라고 했다.

민망해라.


베를린 이후로 처음으로 호스텔에 묵는다.

삼 주 만인가?

그땐 무척이나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이번엔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여행이 많이 익숙해졌구나.

오후 4:56  Map


버스표지판을 보며 노선을 확인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긴장이 되기 보다는 즐겁다.

오후 5:21  Map


오랜만의 관광인데 맛난 거나 사먹어야지 생각하고 인터넷으로 식당을 검색했다.

한 커뮤니티에서 오늘 코펜하겐에서 함께 식사할 생각 있는 사람은 연락달라는 글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한국인과 이야기를 나눈 지도 스무 일이 넘었다.

반가운 마음에 연락해서 약속을 잡았다.


울릴 일이 없는 휴대전화가 전화를 받으라며 재촉했다.

Zeeshan이다.

오늘 같이 저녁식사를 하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니 남은 여행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란다고 했다.

타국에서 누군가와 이렇게 전화로 작별인사를 나누니 기분이 묘하다.

오후 6:02  Map


버스를 갈아탔는데 버스가 시내 반대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아차 싶어서 얼른 내렸다.

따로 어디를 꼭 가야지 한 것도 아니라 크게 마음이 쓰이지는 않았다.

길을 헤매도 여유로울 수 있는 지금이 참 소중하다.

오후 6:06  Map


호텔 앞에서 한국인들을 기다리며 거리에서 사람을 관찰하는 중이다.

코펜하겐 중심가와 가까워 관광객이 많다.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오후 7:07  Map


한참이 지나도 안 오길래 거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남자가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주차장을 찾지 못해 많이 늦었다며 미안하다며 그가 사과했다.

국내의 유명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직원 셋이 출장 차 Copenhagen에 들린 상황이었다.

그들의 업무는 유럽에서 미출시 차량의 내비게이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Hamburg에서 Copenhagen까지, 내일은 Oslo까지 가야한다고 했다.




그들과 Nyhavn까지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한국어로 이야기해서였을까.

처음에 잠깐 말을 더듬는 나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Nyhavn은 다른 곳의 운하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운하 앞 식당에는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어렵게 외부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함께 음식을 먹으며 덴마크의 문화, 카우치서핑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출장차 해외에 나왔지만 한국인끼리만 다니는 상황이라 내 이야기가 신선한가 보다.

북유럽의 복지와 가치, 카우치서핑의 철학에 대해 놀라워했다.

아직 한국에 널리 퍼지진 않았나보다.


대화를 주도하는 내가 낯설었다.

영어만 써야할 때는 듣기 바빴는데 말이다.



해질 무렵의 Nyhavn은 또다른 매력이 있다.




소화도 할 겸 근처 Amelienborg 성까지 산책을 했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절도 있게 순찰을 하는 근위병이 대단해보였다.

미켈란젤로와 같은 마음일까?


어두운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주변의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이런 우연을 경험할 때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가까이서 본 Frederiks 교회.

조명과 석양이 어울린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야경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나 여행하고 있는 거 맞니?


짧은 만남이었지만 반가웠다고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하철이 길이가 세 칸 정도였을까?

무척 짧았다.

50만명의 도시라 그런 걸까, 자전거를 애용해서 그런 걸까.

지하철 내부는 그리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니 불이 꺼진 상태다.

호스텔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내일로 미뤄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