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o가 일찍 출근해야하는 관계로 새벽부터 분주했다.
바쁜 와중에도 그가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그의 첫번째 카우치 서핑 게스트이다.
그 역시 다음 주말에는 카우치 서핑으로 암스테르담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로 인해 카우치 서핑이 좋다고 생각했다니 뿌듯했다.
고마운 친구, 안녕!
버스를 타고 Flensburg로 향했다.
도시간 이동을 버스로 하는 것은 처음이다.
기차보다 저렴하고 풍경을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틀 후면 덴마크로 가는데 데이터가 많이 남았다.
옳다구나 하고 지인들에게 맘껏 연락을 했다.
그동안 3G 사용을 제한한 어플도 몇 개 해제했다.
데이터 걱정 없이 인터넷을 할 수 있으니 후련했다.
하지만 이동 중에도 휴대폰을 잡고 있는 내 모습을 보자니 안타깝기도 했다.
기술의 적절한 사용.
나부터 잘하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옅은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조금 걸었는데 항구가 보였다.
독일 최북단 항구 도시 Flensburg이다.
덴마크 등 북쪽으로 가거나 북부에서 남유럽으로 가는 관광객들이 들리는 곳이다.
가장 먼저 관광정보센터를 찾았는데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20여분 정도의 시간이 있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에 오랜 교회가 있었는데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래된 지붕을 뜯어내고 새로 설치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단장을 하겠구나.
일하는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관광정보센터에서 A4 한 장의 지도를 얻었다.
독일 북부 지역이라 전쟁 때 파괴되지 않은 오래된 건물이 몇 있는 것 말고는
딱히 구경할 만한 것이 없는 작은 도시였다.
체크인은 오후 3시에야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무얼 하나.
널널하겠구나.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고 무엇을 느낄 만큼의 건물은 만날 수 없었다.
다만 지나가며 내 시선을 끄는 것들을 몇 가지 발견했다.
건물에 매달려 있는 사람 조형이라던가 건물 사이로 헌 신발이 가득 매달려 있다던가 하는 것들.
누군가의 즐거운 상상에 덩달아 웃음이 났다.
이 도시엔 지저분하긴 하지만 무료 화장실이 여기저기 있다.
유럽에서 찾기 힘든 것이 작은 도시 곳곳에 있어 신기했다.
오전 9:46 Map
Flensburg의 상징이라는데 어떤 느낌도 받지 못했다.
아, 장난감 같다는 생각은 했다.
괜히 미안하다.
아침도 굶었더니 무척 배가 고팠다.
딱히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 없어 무작정 걷는데 슈퍼마켓이 보였다.
이걸로 한 번 끼니를 해결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안에 들어갔다.
우유 1리터, 바나나 5개, 빵 두 개를 샀는데 2유로가 조금 넘는다.
한화로 3천원 정도.
옳다구나. 앞으로는 자주 애용해야겠다.
길가에 걸터 앉아 맛있게 먹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봤다.
멋쩍었지만 씨익 웃어줬다.
몇 번 하다보니 익숙해졌다. 하하.
딱히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니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숙소를 향해 무작정 걷다가 쉬고 싶을 때마다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점심 즈음에 벤치에 앉아 바람을 느끼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이런 경험이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우연히 발견한 아름다운 풍차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고 햇빛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나오더니 손을 흔들어줬다.
서로 반가움의 인사를 보냈다.
독일에서 외지인에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 본다.
미소는 다른 이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오후 1:07 Map
독일어를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1948년에 있던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전쟁을 뜻하는 것 같았다.
이 지역은 덴마크와 독일 사이에서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덕분에 여전히 독일 땅이지만 덴마크인들이 많다.
오후 한 시가 하교 시간인가보다.
길가에서 이리 많은 학생을 만나는건 처음이다.
저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학교 앞에 수많은 학원차들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와는 하교 풍경이 무척이나 다르다.
오후 1:12 Map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남은 시간에 낮은 벽에 걸터 앉아 일광욕을 하며 주변을 구경했다.
나중에는 모르겠다 하며 아예 벽 위에서 드러누웠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러던가 말던가 편히 눈을 감았다.
내가 좋아하는 푸른 하늘이 보인다.
이렇게 마음껏 올려다 보는 것이 얼마만일까.
무엇이 그리 바빴던 걸까.
행복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세 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어 조심스럽게 대문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다행히 사람이 있어 내가 묵을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우와.
일부러 저렴한 곳을 골랐는데 이렇게 좋은 환경이라니.
사람들이 Air B&B가 좋다고 하는 이유가 있구나.
밀린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한 여성 분이 방으로 들어왔다.
이 집의 주인, Clarissa다.
이제야 퇴근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봤더니 사회복지사라고 했다.
내가 복지에 관심이 많아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근처 마켓에서 저녁 거리를 사왔다.
요리를 하려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후라이팬은 어디 있고 이 조미료는 무엇이란 말인가.
혼란에 빠진 상태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데 Clarissa가 와서 도와주었다.
접시 가득 소세지와 빵을 담아 배부르게 먹었다.
오후 7:15 Map
밤늦게까지 Clarissa와 함께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밝은 성격의 그녀는 여행을 사랑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린 아이 때문에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는 사람을 조직하는 능력이 뛰어나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하지만 여행자를 위한 숙소를 운영하는 것이 더욱 자신의 성격에 맞다고 했다.
앞으로 조금씩 집을 고쳐나가 나중에는 게스트 하우스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충분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다며 조언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루가 기대되는 일.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는 잘 안다.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해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직접 부딪히고 실천할 때야만 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걱정하지 말자.
나는 잘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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