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중년의 중국인이 말을 걸었다.
상하이에서 수자원 기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그는 화학기술박람회 참석을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왔다고 했다.
가볍게 시작한 대화는 남북 관계, 한중 관계, 공산당 문제로 이어졌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주제는 중국의 제주땅 구입 문제였다.
중국인이 제주를 선호하는 이유는 투자이민제도때문인데 한국 여권이 있을 때 유럽이나 미국 등으로 이민 가기가 쉽다고 했다.
다른 나라보다 적은 액수를 투자해도 영주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제주를 선호한다고 했다.
둘 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 사전을 찾아가며 대화를 나눴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대화를 통해 그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기차 시간이 촉박하여 서둘러 나서야 했다.
그의 체온이 남아 있는 명함을 지갑 안에 담았다.
오전 8:01 Map
베를린행 기차가 다가온다.
프랑크푸르트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웅장한 역을 바라보는 게 일상 같았는데.
여기서 만난 모든 이를 기억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들을 만나며 내 어딘가는 변했을 테니 내 삶이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익숙한 풍경이 내 뒤로 사라진다.
글쓰기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휴대폰을 쓰는데 와이파이 신호가 잡혔다.
접속을 시도했더니 일등석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문구가 화면에 떴다.
그래, 그렇다.
2등석 따위.
오전 8:23 Map
독일에서 제일 빠른 기차인 ICE를 타도 베를린까지 네 시간 이상 걸린다.
창 밖으로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었다.
넓은 평야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갈색 지붕의 작은 집들.
큰 변화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느린 풍경이 만들어낸 선율 속에서 어느새 깊은 잠에 들었다.
오전 11:16 Map
태양열과 풍력을 이용한 발전기가 자주 보였다.
원자력 발전소가 없는 나라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들이 탈핵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오전 11:30 Map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돌아다닌다.
진한 우유의 비결일까.
오전 11:45 Map
베를린 중앙역.
수도라 그런지 지금까지 들린 역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도시 느낌이 강하고 규모도 크다.
오후 12:31 Map
Tourist Information에 들러 숙소까지 가는 길을 물었다.
길 건너 보이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다.
시도한 적 없는 버스 승차와 무거운 배낭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겨우 숙소에 도착했는데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아니라고 했다.
로비에 앉아 와이파이의 가호 아래 마음껏 인터넷 서핑을 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지인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해줘서 가고 싶은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프랑크푸르트가 작은 도시였다는 것을 베를린 지도를 보며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오후 3:50 Map
체크인 후 숙소에 짐을 맡기고 거리로 나섰다.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라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때마침 베를린의 명물 커리부어스트 가게가 보였다.
독일의 떡볶이 같은 수준의 분식이랄까?
자극적이지만 맛이 괜찮다.
오후 4:33 Map
가장 먼저 만난 곳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다.
유대인의 무덤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여러 차례 큰 아픔을 겪은 민족, 유대인.
아픔을 아는 만큼 타인의 아픔을 헤아려주기를 바란다.
오후 4:56 Map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인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가는데 멀리서부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배경음악 위로 강한 어조의 말이 광장을 울렸다.
도착해보니 집회가 진행중이었다.
내용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네오나치즘을 반대하는 이들이 모인 것 같았다.
집회현장에 있던 작은 상징물.
괜시리 세월호가 생각났다.
오후 5:07 Map
1848. 5. 18.
유럽의 많은 시민들이 들고 일어선 날.
이 시기의 사건을 두고 판단이 엇갈린다.
혹자는 혁명이라 부르고, 한편으로는 폭동이라 하는 이도 있다.
분명한 것은 급격한 변화의 요구와 기성의 문화를 유지하려는 힘이 상충하던 때이다.
오후 5:09 Map
베를린 중심가에는 구경할 거리가 무척 많았다.
스치며 지나가도 아름다운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머리가 약간 아팠다.
잠시 쉴 겸 계단에 주저 앉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수 명이 내 앞을 달려갔다.
토요일 저녁인데도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관리일까 여유일까.
어느 쪽이든 나에게 필요한 자세다.
오후 6:10 Map
토요일 저녁이라 식당과 카페 대부분이 문을 열지 않았다.
생각치도 못한 일이라 식당을 찾느라 꽤나 고생했다.
한국이라면 오히려 영업이 활발할 시간이다.
타이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는데 영 입맛에 맞지 않는다.
짜고 느끼하고 튀김은 비리기까지 하다.
괜히 해물을 시켰나보다.
절반만 먹고 가만히 식당에 앉아 있었다.
밖이 서늘한데 제국주의 의사당 방문 예약 시간까지 한 시간 가량이 남은 상태였다.
날이 어둡고 거리가 스산했다.
오후 7:25 Map
예약에 실수가 있었다.
결국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노곤하다.
그래도 당장 이틀 후의 숙소를 구해야 했다.
Air B&B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계정 인증을 하지 않아 한참을 고생했다.
여권 사진을 올리라 해서 느린 업로드 속도를 참아가며 수차례 시도했건만 계속 다시 하라고 했다.
결국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베를린에 대해서도, 독일의 영업 문화도, 가장 흔히 쓸 인터넷서비스도 잘 몰랐다.
여행 출발 전, 준비를 하지 않아도 너무 부족했나보다.
이미 늦은 걸 어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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