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스텔은 정을 붙일 수 없었다.
식사를 한 적도 없고, 매번 늦게 들어와 따로 친구를 사귀지도 못했다.
다른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50분 가량 트램을 탔다.
도시 간 기차를 제외하고 가장 길게 대중교통을 탄 셈이다.
운행 속도가 느린 데다 신호에 걸리고 정거장마다 멈춰야 해서 체감상 자전거보다 느리다.
(물론 트램이 훨씬 빠르다.)
독일에서 자전거가 발달한 이유가 있다.
오전 9:27 Map
같은 베를린이지만 확실히 동독이었던 쪽이 덜 화려하고 인구 밀집도나 마을 규모도 작아 보인다.
오늘 묵을 숙소는 베를린의 북동쪽 끝이다.
심지어 관광지도에 나오지도 않은 지역이다.
오전 9:36 Map
처음으로 Air B&B로 얻은 숙소라 기대됐다.
애석하게도 내 기대는 집에 들어가는 순간 사라졌다.
물론 주민이 사는 아파트였지만 장사를 하기 위해 2층 침대도 두고 개인방을 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래도 주인 Felix의 대화는 즐거웠다.
동독과 서독의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젊은 청년이라 그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베를린의 서쪽이 훨씬 발달한 건 맞지만 동쪽은 트램이 발달했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은 자세히 모르니 베를린 장벽과 이스트 갤러리 쪽을 둘러보라며 권했다.
업로드가 원활한 Wifi는 오랜만이었다.
웹서핑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이러다 하루를 그냥 흘러보낼 것 같아 거리로 나섰다.
먼저 베를린 장벽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식당이 보이길래 무작정 내렸다.
관광지 근처는 보통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이탈리안 피자가 싸고 맛있어 보이길래 주문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2.2유로에 이 양과 맛이라니.
독일인에게는 적은 양이겠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요기 거리가 됐다.
오후 2:04 Map
베를린 장벽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잠깐 검색했을 때는 남은 것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이 곳에는 제법 길게 남아 있었다.
장벽 끝에 설치된 모형이다.
긴 장벽 앞에는 감시탑, 조명대, 펜스 등이 일정 간격마다 서 있었다.
오후 2:18 Map
현재 남아 있는 장벽은 이렇게 흉한 몰골이다.
통일 후 사람들이 망치로 벽을 부숴 콘크리트 안의 철근이 드러났다.
장벽 근처에 있는 묘지다.
탈출을 시도하려다가 죽은 사람들의 묘소이다.
통일 후 무너진 장벽을 가지고 장난치는 아이들.
아이들은 전쟁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남측과 북측을 가르는 거대한 휴전선과 DMZ와는 달리
베를린 장벽은 좁은 길 하나를 두고 바로 상대편의 건물이 보이는 거리였다.
상봉 장면을 표현한 조각이다.
우리는 언제 저런 날이 올까.
막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을 무렵, 장벽을 두고 가족이 갈리기도 했다.
가운데 사진은 일부로 장벽 아래에서 결혼식을 올린 커플의 모습이다.
부모님이 그 모습을 보며 울고 있다.
독일은 동서간의 교류가 쉬웠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 심한 진통을 겪었다.
우리는 어떨까.
정말 통일이 가능한 걸까?
만약 하게 되더라도 지금과 같은 준비 정도면 어마어마한 혼란이 있을 텐데.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을 믿는다.
이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갔다.
긴 장벽에 어지럽게 그래피티가 그려진 곳이다.
주변이 스산했다.
날씨도 한몫했겠지만 시끄럽게 떠드는 청년들, 부랑자들도 한몫했다.
가장 구석에서는 노숙자가 작은 텐트 안에서 누워 있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아무리 방수 자켓이지만 걷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박물관이 닫힐 시간이 다가왔다.
제법 돈을 주고 산 박물관 카드가 아까워 비를 뚫고 안네 프랑크 박물관으로 갔다.
가는 길이 매우 복잡해서 헤맸다 겨우 도착했다.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다.
아, 이런.
안내 책자를 자세히 살폈다.
대부분의 박물관이 월요일이 휴무였다.
다행히 유대인 박물관은 가능하다고 해서 찾아갔다.
예전 숙소에서 무척 가까운 곳이었다.
운 좋게도 유명한 화가의 전시회가 열리는 중이었다.
기분이 풀려 입장 절차를 밟는데 박물관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허탈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나가며 딸기 점포를 하나를 봤는데 골동품 같은 양팔접시저울이 놓여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딸기 하나를 접시에 올려놓고 있었다.
나라면 오래된 저울을 계속 썼을까?
무게에 딱 맞춰 팔았을까?
오후 5:28 Map
숙소 근처에 독일 전통 식당이 있다길래 찾아가봤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갈까 싶다가도 오기로 끝까지 갔다.
막상 도착하니 식당 안과 밖 모두 예쁘고 가격도 괜찮아 만족스러웠다.
메뉴판이 온통 독일어라 직원에게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영어를 잘 모른다며 가버렸다.
부족한 데이터로 인터넷 검색까지 하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중후한 노신사가 도와주겠다며 다가왔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어렵게 식사 주문을 마치고 그와 그의 연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20년 넘게 이 마을에 살았다고 했다.
근처의 건물은 백 년이 넘은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조심스럽게 지금 동서 관계는 어떤지 물었다.
그가 말하기를 젊은 사람은 큰 차이를 못 느낀다고 했다.
다만 자신처럼 긴 세월을 지낸 사람들은 급격한 변화를 체감한다고 했다.
대부분은 이전보다 행복하다고 느끼나 몇몇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통일 이전에는 자유롭지는 않았으나 큰 돈이 필요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돈을 벌 수 앖으면 무척이나 힘이 들기 때문이다.
숙녀분이 우리 사정은 어떠냐고 물었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해서 쉽지 않다고 대답했더니 그럴 거라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고 그는 나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음식과 그들의 마음 씀씀이 모두 따스하고 매력적이었다.
긴 여행 동안 많이 만나고 느끼길 바란다는 그의 작별 인사가 기억에 남는다.
오후 8:59 Map
'나의 이야기 > 유럽에서 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일차> 평온한 일상을 즐기다 (0) | 2015.06.24 |
---|---|
<8일차>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0) | 2015.06.23 |
<6일차> 자전거가 좋아 (0) | 2015.06.21 |
<5일차> 준비의 부족함을 느끼다 (0) | 2015.06.20 |
<4일차> 만남, 헤어짐 그리고 만남 (0) | 2015.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