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차적응은 끝났나보다.
5시 30분 경에 일어났다.
여행을 시작하고 가장 늦게 일어난 날이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밖에 있어야 해서 낮잠을 잘 수도 없으니 일부러 잠을 더 청한 결과였다.
오전 6:20 Map
어제와 달리 처음부터 메뉴가 다양했다.
소시지가 특이하다.
안이 딱딱하지 않아 짜서 먹는다.
짠 맛이 강해 따로 먹기는 힘들었다.
오전 7:06 Map
어제 동행을 배웅해주고 짐을 싸서 새 호스텔에 들렸다.
전에 묵던 숙소보다 싸고 시설도 좋았다.
사실 가격 차이는 오늘까지 열리는 기기박람회 때문이었다.
사람이 많아 가장 비쌀 때란다.
주말이라도 20-25유로면 충분하다.
괜히 숙박비로 걱정했다.
오전 8:12 Map
출발 시간보다 40분 일찍 역에 도착했다.
기차표를 보며 목적지를 찾기가 지하철보다 어렵지 않다.
익숙해진 탓일까?
오전 9:42 Map
날이 매우 쌀쌀하다.
긴 옷을 겹쳐 입었다.
북유럽의 추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오전 9:48 Map
계속 호스텔에 묵으려니 관광을 하러 온 것 같다.
베를린에서는 다른 분들 집에서 묵고 싶어 카우치 서핑으로 잠자리를 요청했다.
한 여성 분께서 곧장 답장을 해줬다.
내 행동이 무례하다며 화가 난 상태였다.
왜 자신과 지내고 싶은지 적지 않고, 프로필을 정성껏 작성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이름도 틀리게 보냈다는 이유였다.
그녀의 말에 몹시 부끄러웠다.
카우치 서핑은 교류를 위한 SNS 인데 나는 무엇을 원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는가.
정중하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
큰 깨달음을 준 그녀에게 감사하다.
오전 10:19 Map
프랑크푸르트와 달리 관광정보센터가 북적거렸다.
홍보 리플렛만 봐서는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기 위해 줄을 섰는데 앞에 한국인 일행이 있었다.
염치 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흔쾌히 수락해준 그들과 함께 하이델베르크를 거닐게 되었다.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인데 남자 둘은 유학생, 여자 하나는 교환학생이다. 남학생 한 명은 독일어에 능숙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독일어를 공부하고 유학온 지 일 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가 안내해준 덕분에 하이델베르크를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남학생 둘은 고등학생 때부터 선후배 사이였고 여학생은 독일 쾰른에서 만났다고 했다. 함께 장난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Max가 이야기해준 대로 하이델베르크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깃든 고성과 그 주변은 나를 매혹시키기 충분했다.
화창한 날씨는 풍광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칸트가 걸어다녔다는 철학자의 길에 갔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각에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아직도 주변에는 오래된 대학 건물이 남아 있고 여전히 쓰인다고 했다.
허름한 옛 건물에 불과하지만 그 역사를 생각해볼 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고성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걸어서 가거나 케이블카를 타거나.
케이블카 비용에는 입장료가 포함됐다고 해서 학생 할인을 받고 올라탔다.
가까이에서 본 고성의 모습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가 바라본 역사의 장면이 얼마나 많을까.
고성 구경을 마칠 즈음 비가 쏟아졌다.
독일 날씨는 무척이나 까다롭다.
하이델베르크는 맑은 날이 일 년 중 60일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도 밝을 때 둘러봐서 다행이다.
독일인들은 비가 와도 달리기를 한다.
하긴, 날을 가리면서 운동하기는 어려울 테지.
날씨가 좋은 나라에 살면서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 내가 부끄러웠다.
식당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학생들이 무엇을 먹어봤냐고 묻자 작센과 소시지라고 대답했다.
돈까스와 비슷한 슈니첼을 추천해줬다.
식사를 하며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이 어떤지 물어봤다.
학비도 싸고 서민 물가가 안정된 것이 참 좋다고 했다.
대학 생활과 수업 역시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하지만 남과 다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불안이 컸다.
자신을 알아주고 지지해주는 이가 적어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다.
독일 대학과 한국 대학을 비교하며 이곳은 교육을 하는 반면, 한국은 장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교환학생으로 온 여학생은 한국 교육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고등학교까지 시키는 대로 하도록 강요하다가 갑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구조와
대학은 더 깊은 학문을 배우는 곳인데 고작 고등학교의 연장선에 불과한 수준에 불만을 표했다.
남학생들이 다니던 고등학교는 입학하자마자 교사들이 학생들을 줄세워놓고 여기까지는 SKY, 여기까지는 인 서울, 나머지는 지방대라는 등의 발언을 한다고 했다.
덕분에 학생들이 현실을 알게 되어 웬만한 외고보다 성적이 좋다며 웃었다.
교육 주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전망과 그에 따른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앞으로 한국이 힘든 상황을 맞이하겠지만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고 평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깊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한 학생은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처음 해보는 것이라며 웃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말할 기회조차도 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함께 지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세차게 내리는 비 아래에서 그들과 아쉬움의 작별 인사를 나누고 역에 돌아갔다.
기차 시간까지 세 시간 가량 남았다.
오전의 실수를 되돌아봤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찾고 진심을 담아 쪽지를 보내자고 다짐했다.
당장 베를린에서 카우치 서핑을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호스텔을 예약했다.
그리고 그 다음 행선지인 함부르크에 있는 호스트를 검색했다.
가장 먼저 한 청년이 나왔다.
프로필을 쭉 읽어내려가는데 한 문장이 내 시선을 끌었다.
자신은 남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기를 잘한다고 했다.
그에게 구구절절 상황 설명을 했다.
내 여행 목적은 독일 사람들의 삶과 가치를 아는 건데 관광만 하고 있다.
내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요청문을 작성하기가 어렵다.
지금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 네가 도와줄 수 있겠느냐.
한 명에게만 문자를 보냈는데도 기운이 빠졌다.
보통 며칠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5명에서 10명 정도 요청을 보낸다는데 아직은 서툴고 어렵다.
그래도 예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는 않으리.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기 직전 그 청년에게서 답장이 왔다.
환영하니 오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이 때 하는 말인가 보다.
마음 편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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