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유럽에서 살다

<3일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아상블라주 2015. 6. 18. 07:34



이제는 기차표 예매가 수월하다. 

하이델베르크 당일 왕복 기차표를 끊었다. 

Max가 하이델베르크를 추천해서 검색해봤더니

고성과 철학자의 길 등 유명한 관광지였다. 

그것만으로는 큰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칸트와 한나 아렌트, 막스 베버, 하버마스 등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활동했던 철학의 도시라는 이유에 하이델베르크행을 결심했다. 

이 역시 철도 파업 보상 특가로 편도당 19유로에 구입했다. 

베를린행 기차표를 너무 싸게 사서 비싸게 느껴지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20유로 정도를 아꼈다. 

오전 5:50  Map




호스텔에서 제공한 아침식사. 

독일 우유는 참 맛있다. 

아침식사를 마쳤는데도 배가 고파 3시간 후에 다시 한 번 먹었다. 

오전 6:28  Map




맙소사. 

갑자기 비가 온다. 

세차게 쏟아진다. 

어제는 실컷 거리를 돌아다녔으니 오늘은 박물관을 다녀야겠다. 

오전 6:37  Map




오늘은 동행이 있다. 

어제 만난 한국인이다. 

사연이 많아 보였다. 

혼자 다니게 두는 것보다 같이 다니면 좋을 듯해서 내가 먼저 동행을 제안했다. 

덕분에 나 혼자라면 가지 않을 곳을 여러 번 들리게 됐다. 

유명한 DM매장 내부. 

화장품, 약품, 미용용품, 생활용품을 주로 다루는 곳이다. 

가격도 괜찮고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그녀가 지인들에게 선물을 줄거라며 차와 비타민제, 치약 등을 잔뜩 샀다. 

이미 무거운 배낭 무게에 나는 침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오전 8:54  Map




가장 먼저 발길을 향한 곳은 모네전이 열리는 Stadel 박물관이었다. 

개장 시간에 맞춰갔음에도 사람이 많았다. 

모네의 힘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렇게 유명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처음이다. 

과연 모네의 그림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그의 그림 앞에 선 순간 그런 생각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파도처럼 밀려온 감정이 나의 가슴을 때렸다. 

심하게 요동치다가 다시 잔잔해지는 태풍 뒤의 바다처럼 흔들리는 내 마음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는 시대를 넘어 나를 움직였다. 

눈물을 글썽이며 다음 작품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오전 11:04  Map


얼마나 자신을 닥달하여 이 경지에 이른 걸까. 

휘몰아치듯이 간 걸까 뜨거운 용광로에 담그듯이 한 걸까. 

그도 아니라면 하얀 눈 위로 떠오른 태양처럼 바라본 걸까. 

이런 작품을 남겨준 그에게 고마웠다. 

오전 11:21  Map




들끓는 마음을 추스리고 거리로 나섰다. 

어느새 빗방울이 그쳤다. 

그녀와 모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마인강의 다리를 건넜다. 

그런 우리를 비웃는 듯 갑자기 비가 거세졌다. 

쏟아지는 비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배고픔이 우리를 덮쳤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한참을 가도 그 흔한 카페나 식당이 나오지 않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식당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굳은 인상의 중년 남자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메뉴판을 갖다준다.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물과 맥주도 주문했다. 




주인은 무척 여유로웠다. 

마실 것도 천천히 나왔고 요리는 시작하지도 않아 보였다. 

우리는 그가 독일의 여유를 보여준다며 농을 치면서도 주린 배를 움켜 잡았다.

음식이 나온 건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식사를 하며 그녀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힘들었던 과거와 압박감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그 상황을 벗어나기를 바라며 그저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장난을 쳐서 우리를 웃게해 준 주인이 고마웠다. 




비가 다시 그쳤다.

거리에 빛이 내렸다. 

배도 부르고 하니 Romer광장까지 걸어갔다. 

그녀가 카이저대성당 안에 들어가 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다. 


둘 다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문을 열기가 복잡하기로 유명한 호스텔이라지만

오늘 얻은 방은 더욱 어려웠다. 

잠을 청하려고 누웠는데 자꾸 문을 열기 위해 애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나가서 열어주었다. 

다들 고마워하면서도 민망해했다. 

피곤했는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배가 고프다. 

자다 보니 저녁 시간을 놓쳤다.

배가 불렀나 보다. 

10시간 후에야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어찌 해야 하나. 

오후 9:17  Map


룸메이트 중 넷이 여자였다. 

모두 미국, 영국에서 온 사람들이라 말하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한국에서도 여자분들 수다에 끼어들기 힘들었는데 이건 나에게는 벅차다. 

그저 웃을 뿐이다. 

유쾌한 그녀들, 여행 경험도 나누고 침구 정리 등 여러 생활 기술도 알려주더라. 

비록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오후 10:11  Map




하나 둘 나가고 금발의 여성과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밝고 털털한 매력을 지닌 분이었다. 

미국 남쪽의 어느 주에서 왔다는데 두 번을 놓쳤더니 다시 묻기엔 민망했다. 

그녀가 체코에서 사왔다며 책 한 권을 보여줬다. 

프라하의 77가지 전설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계속 프라그 프라그 하기에 무언가했더니 프라하였다. 

프라하, 프라그, 프라가, 프락 등 다양하게 부르더라. 

예전에 지인이 프라하를 극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가보고 싶어졌다. 

오후 10:37  Map


오후까지 한국인과 동행했더니 영어로 말하는 것이 다시 서먹했다. 

듣기는 많이 늘었는데 말하는 데는 여전히 주저함이 있다. 

단어라도 내뱉어라. 

그래야 상대방이 말할 의향이 있음을 안다. 

영어를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소통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는 기피 대상이다. 

오후 10:58  Map



한국에서 가져온 책갈피를 룸메이트들에게 나눠주었다. 

부채 모양 안에 태극이나 민화 등이 그려져 있는 책갈피다. 

선물을 나눈다는 것은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즐겁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