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잘 지각하던 아이들도 오늘은 일찍 등교했다.
제시간에 와야 일찍부터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 효과가 있나 보다.
그만큼 아이들의 기대가 크다는 뜻이겠지.
새로운 수업방식의 핵심은 자발성이다.
아이들은 전체시간표에 나와 있는 수업과 활동 중에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여
스스로 시간을 맞춰 이동하고 참여한다.
오늘까지는 예전처럼 교실에서 함께 같은 수업을 받았지만
내일부터는 아이들이 직접 진행하는 수업을 중심으로 전체시간표가 작성된다.
아침시간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개인시간표를 작성해보았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직접 시간표를 짜는 것도,
학교에서 목걸이명찰을 차고 다니는 것도 모두 낯선 일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어색함과 즐거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코넬식 공책정리에 관한 영상을 보며 구조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jKp4-p8TrKM&feature=youtu.be)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수업 방식에는 큰 변화가 있지만 평가 방식은 그대로이고
너희들을 성적으로 판단하는 세상도 여전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짊어져야 할 책임이 더욱 커진 것을 느꼈던지
공책 정리에 무척이나 열심이었다.
중간놀이 시간에 발레 동아리 아이들이 음악실에서 활동하다가
옆 반 선생님이 들어와 뭐하고 있냐고 물어봐서 당황했지만 상황을 잘 설명하였다고 했다.
마침 이어질 시간에 돌발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역할극을 계획했던 터라
아이들에게 좋은 예시가 되었다.
다른 선생님께서 내가 동행하지 않고 아이들만 활동을 하는 것을 봤을 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 지 역할극을 통해 의견을 나누어보았다.
역할극을 즐기며 토의를 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당당하고 밝게 인사를 드린다.
2.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 이유를 설명드린다.
-우리는 자신의 강점을 계발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이 바뀌더라도 강점, 자율, 공부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수업을 했음에도 아이들은 아직 익숙치 않나 보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과학실에서 실험을 하기로 한 아이들이 열쇠를 받기 위해 행정실로 갔는데
행정실 선생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우물쭈물 대답해
선생님께서 의심하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발생했다.
하핫.
이러면서 아이들이 성장하겠지.
점심시간에 과학 기구를 살펴보며 다양한 실험을 계획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오후에는 강점이 같은 아이들끼리 모여 수업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슷한 성향이 모여 의견을 나누기가 편한 듯 했다.
아이디어가 가능한지 여부는 판단하지 말고 가능한 만큼 다양한 의견을 내도록 하였다.
다양하지만 일반적인 학교의 수업이라 하기 힘든 주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주제를 어떻게 수업으로 만들어내는지 이야기하였다.
"만약 너희들이 단순히 한 시간 즐기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들은 수업이 될 수 없어.
하지만 말야,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훌륭한 주제야.
예를 들어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그냥 한 시간 동안 너희들끼리 축구를 하고 즐기는 거라면 수업이 아니야.
하지만 더욱 성장하기 위해 함께 드리블과 패스를 연습하고 전술을 짠다면 멋진 수업이 되겠지.
또 박스집 건축을 생각해보자.
1학기 때 교과서로 탑을 쌓았던 것 기억하니?
처음에는 무릎까지 쌓기도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키를 훌쩍 넘는 탑을 쌓았지?
너희들이 박스를 이용해서 어떻게 하면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을 만들 수 있을까
토의하고 책을 살펴보고 연구한다면 너희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니.
결국 너희들이 낸 주제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경험하고 연구한다면
그것은 모두 훌륭한 수업이 될거야."
설명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수업을 만들도록 하였다.
수업을 진행하고 싶은 아이는
포스트잇에 수업 주제를 적고 밑부분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이름을 적는 의미는 그 수업의 책임자는 자신이며
수업 진행과 사용한 장소 정리 등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붙이면 대형시간표가 완성된다.
그 시간표를 보며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개인시간표를 작성하는 것이
새로운 수업방식의 핵심 틀이다.
내일 첫 시도로 세 시간을 아이들의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벌써 열 개가 넘는 수업이 만들어진 상태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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