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이 졸업식장을 치우고
교실까지 정리하니 남은 시간은 겨우 30분.
미리 준비한 편지를 들고 아이들 앞에 서니
벌써 몇 명의 아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도 울컥했지만, 편지를 읽어야 했기 때문에
속으로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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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랑스러운 누리보듬 4기에게
일 년 전, 선생님은 일찍 학교에 나와
너희들을 처음 만날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너희들은 어색했던지 곧장 교실 밖으로 나가거나
안에 들어오지를 못하더구나.
한 명, 두 명씩 들어오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어느새 교실이 꽉 차고 너희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데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몰라.
해맑은 미소와 고운 마음 모두.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만남이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벌써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됐구나.
우리가 한 교실에서 웃고 떠들던 기억이
이제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겠지.
아쉽다. 정말 아쉬워.
너희들에게 좀 더 잘해줄 수 있었는데.
좀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만 같아서.
그래도 그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싶구나.
지금은 슬퍼하기 보다는 함께 우리들의 빛나던 순간을 되돌아보고 싶어.
돌이켜보면 참 아름다운 기억이 많아.
교실에서 돗자리 펴놓고 피서를 했었고,
선생님이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너희들이 준비해서 패션쇼를 하기도 했지.
지금은 그때를 부끄러워 하지만 말야.
교실에서 맹수 사냥을 하고 운동장에서 매머드 사냥을 했지.
하늘로 날아가는 눈사람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수많은 교실놀이를 했는데 너희들은 몇 가지를 기억할까.
우리를 울렸던 돼지 P짱 기억나니?
교과서를 던져두고 직접 책과 스마트폰을 검색하며 자료를 만들었어.
어려울 것만 같았던 소설도 직접 써보고 발표회도 열었지.
피구는 몇 종류나 했을까?
어제도 새로운 종류를 만들었으니.
개교기념일에 학교에 나온 아이들은 짬짜면을 먹었지.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고, 겨울이면 눈싸움을 했어.
역사 수업이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지?
아직도 너무 많으니 이제 그만 적을래.
사실 선생님에게는 이 많은 추억보다도 소중한 기억은
너희들을 꼭 안아줄 때,
서로 사랑한다고 말할 때,
함께 눈물을 흘렸을 때야.
그렇게 우리는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장난치고
그러면서도 다같이 어울리며 긴 시간을 보냈단다.
지금의 너희들을 보면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다.
너희들 덕분에 선생님도 많이 성장했고.
짧게라도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
쑥스러워도 선생님과 눈 마주칠 준비, 됐니?
01아, 항상 밝은 얼굴로 웃고 주변을 잘 도와줘서 고마워.
네가 맨 처음 '멈춰'를 해줬기 때문에
우리반이 더 평화로워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끔 토라지기도 하지만 금방 다시 웃던 네 얼굴이 눈에 훤하다.
여자아이들에게 제일 괴롭힘 당하는 02이.
일 년 동안 괴로웠지?
사실 6학년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라 생각해. (웃음)
네가 친구들에게 잘 대해주기 때문에
친구들도 너에게 편하게 장난치는 거야.
항상 고마워.
기상천외 아이디어 뱅크, 신이 내린 연기자, 03.
그런 너를 친구들이 참 좋아해.
항상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보고 궁금해 했지.
그런 너를 보며 흐뭇했던 적이 많구나.
6학년 되어서는 자주 눈물 보이지는 않기!
역사왕 04.
우리반에서 선생님에게 질문을 가장 많이 했지.
각종 분야의 질문과 특히 군대에 관해서.
네가 미리 알려고 하지 않아도 군대 가서 다 배우니 괜찮아.
2년 동안 함께해줘서 정말 고맙다.
항상 웃는 표정의 05이.
선생님이 많이 도와준 것도 없는데
언제나 선생님을 따라주고 웃어주고 챙겨줘서 정말 고마워.
친구들과 웃으며 놀고 있는 네 모습을 보면 선생님이 참 행복해.
그래도 동생들 괴롭히는 건 안된다.
06! 요 녀석!
선생님은 너와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는데, 자꾸 안 나오고!
놀랬지?
네가 선생님에게 존경한다고 말해줬을 때,
선생님 가슴이 참 뭉클했다.
더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항상 응원할 테니 힘내렴.
넉살 좋고 최고의 귀차니즘을 지닌 07이.
사실 네가 관심 있는 분야에는 열정을 쏟는 것 다 안다.
몇 년 후에는 게임이 아닌 전혀 다른데 그 열정을 쏟을 테지.
언제나 친구들과 둥글둥글 잘 지내줘서 고맙다.
단단한 몸을 가진 08.
겨울에도 추위를 타지 않는 불같은 너를 보면
선생님으로서는 참 신기해.
사실 08에게는 능력이 참 많아.
세상이 ‘공부’라고 말하는 것을 조금 못하더라도
08가 가진 능력을 많이 발휘해서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 믿는다.
가장 많이 ‘멈춰’회의를 하게 한 09이.
되돌아보니 조~금 민망하지?
그 사이에 정말 많이 변했구나.
4학년 때 네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09이 맞나? 싶을 정도니까.
점점 더 성장할 거라 믿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항상 노력하렴.
축구를 사랑하는 소년, 10이.
5학년 때는 많이 못해서 정말 아쉽겠네.
10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접착제 역할을 해서
우리반이 더 끈끈해졌다고 생각해.
항상 궂은 일도 다 해주는 너를 보며 참 고마웠단다.
Yo,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 11?
I say ‘1’, You say ‘1’
속 깊고 다정다감한 네가 선생님을 자주 위로해줬지.
친구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없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정말 고맙다.
6학년 때는 아침활동 할 수 있도록 일찍 나와주렴.
끼 많고 꿈 많은 12이.
스스로 이제는 싸우는 경우가 줄었다고 생각한다니 참 다행이야.
6학년이 되어서도 친구들이랑 잘 지낼 거라 믿어.
남자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많이 선생님에게 사랑해준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따뜻하게 안아준 것도.
빰빠밤빠바바빰. 이제는 여자 차례인가요?
쾌활하고 명랑한 기운 넘치는 13이.
언제나 친구들을 따스하게 포용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아이들이 힘들 때마다 너의 곁으로 갈 수 있었어.
예전에는 선생님에게 잘 안겼는데 이제는 잘 안아주지도 않고.
이따가 한 번 찐하게 안고 가.
14아,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장점이 많아.
정말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어.
당당하게, 친구들에게 진심을 다해 잘해준다면
너의 고민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생님 믿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꼬마 천하장사 15이.
2년 동안 선생님 꽉 끌어안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는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거 알겠지?
언제나 선생님을 보며 웃어주고, 애교 있게 행동해줘서 고맙다.
그런데 네 주먹은 정말 매워.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조그마한 몸으로 유연하게 친구들을 아우르는 16.
조용히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이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
선생님을 항상 도와준 것도 고맙고.
선생님이 알게 모르게 16에게 의지한 것이 많은가봐.
앞에 수식어를 붙일 필요 없는 17이.
네 에너지 덕분에 우리반이 좀 더 활발할 수 있었어.
이제 친구들이 너를 바라보거나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달라졌을 거야.
그러니 당당해지렴.
너는 누구보다 따뜻한 아이란 걸 선생님을 잘 아니까.
18.
너의 웃음이 그리워질 날이 오겠지.
너 역시 너의 웃음이 그리워질 거야.
친구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고생했던 거 알아.
너의 빛나는 아이디어 덕분에 우리반의 활동이 더 풍성해질 수 있었어.
고맙다.
먹을 것 포기 못하는 19이.
여러 방면으로 욕심이 많아
선생님보다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는 너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점점 더 행복해질 거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으니 걱정하지 마렴.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야.
우리반 마스코트 20이.
귀여운 외모에 귀여운 말투.
우리 모두 너를 아낀다.
말수가 적어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많지 않아 아쉽지만,
너의 웃음만으로도 충분했어. 고마워.
예술적 감각을 지닌 우리반 화가 21.
너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선생님이 자꾸 방해해서 미안했어.
항상 하고 싶은 말 잘해줘서 고마워.
6학년 때는 아름다운 말을 쓰기를 바랄게.
누가 뭐래도 우리반의 맏언니 22이.
마지막에 선생님에게 과자를 먹여줄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마워.
아무리 싫은 표정해도 순수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
항상 선생님 도와줘서 고맙다.
우리반 천사 23.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씨가 참 예뻐.
6학년이 걱정되지?
항상 선생님과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걱정마.
언제나 든든히 너의 편이 되어줄거야.
따스한 용기를 지닌 24.
선생님도 하지 못한 일을 해줘서 정말 고맙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내용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배우려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았어.
다음에 선생님 만나면 웃으면서 달려와야해.
영화보다 더 귀여운 니모 25이.
전학와서도 잘 적응해줘서 고마워.
네 빵빵한 볼을 보면 꼬집어주고 싶은 건 어쩔 수 없구나.
다음에 만날 때는 이름 잊지 않고 부를게.
이렇게 한 마디씩 해줘도,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정말 많아.
이제는 전할 시간이 부족하구나.
그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만 해주려 해.
애들아,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따스하게 세상을 보듬어줄 수 있는
누리보듬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잘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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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우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몇 번이나 눈물을 참았다.
함께 울고 웃고.
마지막으로 졸업생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를 위해 '이젠 안녕'을 불렀다.
'...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그리고 진정된 아이부터 한 명씩 꼭 안고
집으로 보냈다.
이젠, 정말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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