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야기/행복한 삶

20140227 함께 웃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아상블라주 2014. 2. 27. 22:50

드디어 학년과 업무가 결정되었다.

5학년 3반. 방송.


곧장 클래스팅으로 아이들에게 연락했다.


'선생님 5학년으로 정해졌어. 

더 자세한 건 묻지 않기! ^^ 

혹시 오늘 교실 이사 도와줄 수 있는 친구 있어요?'


내가 5학년을 맡았다는 말에만 서운함을 표시할 뿐

도와준다는 아이는 없었다.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갑작스레 연락한 거라 아이들의 사정도 이해됐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쌤, 이제야 일어났어요. 아직도 하고 있어요? 얼른 갈게요."


그렇게 하나 둘 연락이 오더니

약속한 시간이 되자 제법 많은 아이들이 모였다.

해맑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으며 교실로 올라갔다.

충격과 고난의 시간이 기다릴 거라 생각도 못한 채.


하하호호 떠들며 기분 좋게 교실 정리를 했다.

다른 건물로 짐을 옮기는 거라 힘이 들긴 했지만

쉬엄쉬엄 하며 간식을 먹기도 했다.


짐을 다 옮기고 차분히 새 교실을 둘러봤는데

얼핏 보고 판단한 것이 실수였다.

대형공사를 해야할 상황이었다.


나와 아이들 모두 막막해서 진행 속도가 더뎌졌다.

다시 집중해서 해보자고 말하자

아이들 특유의 에너지로 웃으며 치우기 시작했다.

서로 농담하고 깔깔대며 땀을 흘렸다.


나는 아이들이 하기 힘든 일에 집중하고,

아이들은 내 결정을 기다리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며 일을 척척 해냈다.


가끔 아이들이 "선생님, 이건 어떻게 해요?"

라고 물어보면 나는

"네 판단대로 하렴. 정 이상하면 나중에 선생님이 옮기면 되니까."

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옮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B가 말했다.

"전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힘든 일 하지 않았을 거예요."

"맞아요! 선생님이니까 해주는 거예요."

옆에서 E가 거들었다.


오후 5시까지 했는데도 끝이 나지 않았다.

꽉 채운 대형 쓰레기 봉투를 몇 번이나 버렸는데도.

나머지는 내일로 미루기로 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가까운 분식점에 가서 12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분명히 그릇에 음식이 담겨져 나오는데

나오자마자 그릇은 바닥을 보였다.

추가주문, 추가주문, 추가주문...

나중에는 빈 그릇으로 식탁이 꽉 찼다.

어른 한 명에 아이 7명 맞나?


끝나고는 후식을 사러 앞 마트로 가는데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힘든 일을 하면서도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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