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문한 학교는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도 많고 종합학교라 성적도 좋지 않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 비해 분위기가 좀 더 밝았다.
적어도 자는 아이들은 없었다.
교사의 수준은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업무가 별로 없고 수평적인 분위기라 전체적으로 우리보다 나아 보였다.
우리도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충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
6시간 내리 수업을 해서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Lasse와 여러 교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섰다.
Flensburg까지 Lasse의 친구가 데려다주었다.
그는 교사였지만 12시 밖에 안됐는데 퇴근을 한다.
오늘은 수업이 더 없다는 이유였다.
자신은 독일에서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교사 생활도 괜찮고.
데려다 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텅 빈 Lasse의 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없는 집에서 이것저것 꺼내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쳤다.
나를 믿고 이렇게 하게 해준 Lasse와 Lotta가 참 고맙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그러고보니 육지를 통해 국경을 넘는 경험은 처음이구나.
그냥 옆 동네로 마실가는 것 같았다.
아무런 절차도 없었다.
우린 언제 걸어서, 버스로, 기차로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
드디어 덴마크다.
국경에서 Aabenraa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두 호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휴가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나와는 달리 호텔이나 친구 집을 전전하며 다닌다고 했다.
그런 방식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겠지.
특이하게 셀카봉을 들고 다녔다.
옷깃이 스치는 것도 인연이라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오후 1:31 Map
버스를 탔는데도 여전히 인터넷이 됐다.
지난 번처럼 고생은 안하겠구나 생각할 무렵 신호가 끊겼다.
Aabenraa에 도착하면 얼른 심카드를 사야겠다.
오후 1:57 Map
소와 양과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마냥 평화롭다.
덴마크는 목장으로 유명하다.
땅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인구가 500만명 밖에 되지 않아 농지가 충분하다.
여분의 땅은 여유에 큰 영향을 준다.
오후 2:08 Map
덴마크는 공공장소에서 와이파이 사용이 쉽다길래 마음 놓고 있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호스트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어떻게든 되겠지.
오후 2:32 Map
약속한 시간이 됐는데도 호스트가 오지 않았다.
만나기로 확실히 정한 것도 아니라서 계속 기다린다고 터미널에 올 거라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무작정 통신사나 심카드 구입처를 찾아 거리를 돌아다녔다.
시골이라 그런지 별 게 없고 휑하다.
혹시나 싶어 계속 와이파이를 확인하며 걸어다녔다.
가까스로 거리 한 가운데서 잠기지 않은 와이파이를 찾았다.
다행히 호스트와 연락이 닿아 주소를 물어보고 구글맵으로 검색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고생하는구나.
오후 3:41 Map
긴장이 풀리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길 닿는 곳 모두가 예술이다.
오후 3:56 Map
걸어가는 동안 작은 숲 하나를 지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산책로가 있다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겠다.
하긴. 있을 때도 그 소중함을 몰랐던 나이지만.
우리의 장승과 닮은 목조상이 숲 한 가운데에 있었다.
어떤 의미일까.
걷다보니 더워져 재킷을 벗고 걸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다.
정말 여름이구나.
호스트의 집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개가 달려든다.
제법 큰 녀석이었는데 생후 7개월이었다.
뒤 이어 호스트 Johanne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데 Anne가 계단을 내려왔다.
2주 동안 그녀의 집에 묵는 손님이라고 했다.
폴란드인이었는데 워킹 홀리데이로 덴마크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Anne가 바쁘게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차량등록을 위한 거란다.
그녀는 신문배달을 하는데 그를 위해 폴란드에서 차를 가져왔다고 했다.
Johanne와 Anne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가려고 했는데 안장이 너무 높았다.
높이를 조절하려면 장비가 필요했다.
우체국이 닫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둘만 보냈다.
다리가 짧은 게 한이로구나.
오후 4:57 Map
얼마쯤 지났을까.
그녀들이 돌아왔는데 표정이 밝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우체국이 이미 문을 닫았다고 했다.
기분전환할 겸 바다로 갔다.
자전거를 타고 10여분을 달리니 해변이 보였다.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개를 동행한 지라 인적이 드문 외곽으로 갔다.
바다에 오니 개가 신이 나서 뛰어 놀았다.
Johanne가 개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모래장 위에 털썩 앉아 Anne와 이야기를 나눴다.
21살의 젊은 그녀는 이미 여행의 베테랑이다.
한 번 여행을 시작하니 한 장소에서 몇 년씩 머무르는 건 따분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폴란드는 가난하지만 사람들이 만족해하며 지낸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폴란드에서 계속 지낼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큰 말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봤다.
해안을 거니는 게 아니라 깊은 바다까지 헤엄쳐 갔다.
컴팩트 카메라로 최대한 확대해서 촬영한 게 저 정도다.
우와.
영화에서나 나올 모습이다.
날씨도 쌀쌀해지고 허기가 생겨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도중에 마켓에 들러 먹을 거리를 샀다.
Johanne가 오늘은 여름 첫날이라는 핑계를 대며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기분이 좋아지는 그녀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Johanne가 말에게 먹이를 주러 간 사이에 나와 Anne만 먼저 저녁을 먹었다.
면을 좋아하는 그녀가 스파게티를 만들어주었다.
원래 소스가 혼자 먹을 양밖에 없는데 나에게 나누어주느라 모자랐다.
장난 삼아 고추장을 꺼내주었는데 맛있다며 비벼 먹었다.
신기할 따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Johanne가 돌아왔다.
그녀는 물리치료사인데 장애아를 위한 유치원에서 일한다.
아이들이 강도 높은 활동에 일찍 지치기 때문에 다른 유치원보다 하원 시간이 빠르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프리스쿨을 10년 동안 다녔다.
(프리스쿨은 우리 나라로 치면 대안학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덴마크에 관심이 생긴 이유도 그 때문인데 말이다.
6살부터 16살까지 다녔는데 자신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 무척이나 행복했다고 말했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셋이서 이야기를 나눴다.
세 명이 모두 다른 언어를 쓴다.
덴마크어, 폴란드어, 한국어, 그리고 영어.
서로 가르쳐주며 깔깔대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Johanne와 밤에 일하는 Anne의 사정으로 10시쯤 이야기를 마쳐야 했다.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새벽부터 출근해서 6시간 연속으로 수업을 하고, 국경을 넘어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으니.
이런 생일이 또 있을까.
피곤했는지 금방 곯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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