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 개월 동안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억지로 책상에 앉아도 몇 줄만 쓰고 이내 돌아서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쓰고 싶은 글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간 생각의 파편이나 실마리를 모아둔 것도 제법 있고, 심지어 책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손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생각은 점점 많아지는데 내 안에서만 떠들어댈 뿐이었다.
무엇 때문일까. 그를 위해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보니 세 개의 장벽이 겹겹이 둘러싼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글의 영속성에 대한 두려움, 솔직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완벽함의 추구. 이 벽의 끝까지 걸어가보니 각각이 단절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글쓰기의 무거움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면 그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언제나 인정으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글쓰기가 두렵다. 내 얕은 깊이가 드러날까, 내가 쓴 글이 나에게 화살로 돌아올까 걱정이 된다. 휘발되어 사라지는 말과 달리 영원히 남게 되는 글은 당시의 나를 나체인 채로 광장에 두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큰 문제인가? 본래의 모습으로 훨훨 다니면서 언제라도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 기성복으로 제 몸을 가린 채 곁눈질로 타인을 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부족한 깊이는 조금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할 테고, 돌아온 화살은 피하거나 맞더라도 견뎌낼 수 있는 강한 몸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글쓰기의 두려움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내가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예로부터 글쓰기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는데 매우 훌륭한 활동이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른 이와 생각을 나누는데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글을 쓰며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른다.
여전히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경직되어 멈춰있기 보다는 짧게라도 꾸준히 쓰며 힘을 길러간다면 언젠가는 글쓰기의 무게에 짓눌리는 상황은 벗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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