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일어나
주섬주섬 검은 옷을 챙겨 입었다.
이런 때일 수록 정신차려야 한다.
교실에 가니 E가 있었다.
어제 E의 어머님이 부탁한 것도 있고,
나 역시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어
E를 데리고 협의실로 갔다.
"요즘 마음이 어떠니?"
"짜증나고 화나요."
E의 아버지는 해경이시다.
지금도 긴박한 상황으로 인해 많이 바쁘시다.
인터넷이나 언론에서 해경에 대해 나쁘게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E는 매우 속상하고 답답한 것이다.
마음을 달래주고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E의 아버지는 해경이야.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는 해경은 E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E는 해경이라고 말하면 아버지가 떠오르지만,
지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해경은
해양경찰의 명령 체계와 구조를 이야기하는 거야.
그 둘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겠니?"
E는 고개를 끄덕였다.
E가 어려운 설명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다행이다.
마음도 편해졌다고 하고,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을 보니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나보다.
그렇다고 완전히 편해지지는 않겠지만.
작년 제자 J와 H가 크게 다퉜다.
세월호 침몰로 인해 매우 예민했던 J에게
H가 실종자에 대해 무심코 던진 말이 화근이었다.
한참을 달래주니 J가 속마음을 드러냈다.
이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작게 보여 속상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라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더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J가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아니, 어리니까 더욱 할 수 있는 게 많아.
너에게는 시간이 많잖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에 대해 공부하렴.
배에 대해서든, 우리나라의 구조에 대해서든."
제자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퇴근하자마자 곧장 도서관으로 왔다.
걱정과 기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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