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딴에는 효과적으로 아이들에게 내가 화난 이유를 설명한 것 같은데
쉬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화낸 이유를 알겠니 하고 물었더니
모르겠다거나 전혀 다른 답을 들은 뒤부터였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열 올려 이야기했던 대부분의 것들은
아이들의 귀로 들어가자마자 잊혀지는 것에 불과했다.
그 이후로 점점 꾸지람이나 설교 등을 할 때에
내가 말하는 시간을 점점 줄였다.
요점만 몇 문장으로 말하고
나머지는 사진으로 직접 보여주거나, 자기들끼리 찾아내게 했다.
전교어린이회 투표를 위해 줄을 서고 있을 때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5학년 3반!' 하고 외쳤다.
며칠 전의 실수와 다르게, 이번의 외침은 약속된 것이었다.
학년 초, 아이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도 무서울 때가 있다고.
첫 번째는 너희들의 안전이 위태로울 때.
두 번째는 우리반이 책임을 지키지 못해 다른 반에 피해를 줄 때.
두 가지 경우에 대해 예화를 들려주면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두 번째 상황이었다.
우리반 투표 순서가 되어 줄을 서는데
선거를 진행하는 선생님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떠들고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멈추기 위해
큰 소리로 외치고,
가까이 가서 나지막이 몇 차례 불렀다.
그 정도면 아이들을 진정시키기에 충분하다.
비록 약속했다 할지라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학교와 학급이 좀 더 소규모로 변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된다면
두 번째 경우가 생길 일이 대부분 사라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의 벽은 높고 단단하다.
교실로 돌아와 내가 소리친 이유가 무엇일까 물었더니
'장난을 쳐서' 라는 대답이 나왔다.
아이들에게 장난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
"선생님도 장난을 좋아하잖아. 그건 괜찮아.
선생님이 소리쳤을 때 우리는 무슨 상황이었지?
그래. 투표를 위해 줄을 서고 있었지.
우리반 때문에 진행이 어려웠던 것 알고 있니?
그것 때문에 그래.
장난은 좋지만,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가려줬으면 좋겠어."
이어서 '권리와 책임' 수업을 했다.
함께한 시간을 돌이켜보며 좋았던 점을 말해보라 했더니
예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권리,
새로운 방식의 수업과 학급살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에 꾸벅 절했더니 아이들이 박수를 쳐줬다.
나 역시 아이들이 생각 이상으로 잘 배우고
큰 다툼 없이 잘 지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시간 간격을 두고 다섯 가지를 적게 했다.
1. 내가 누리고 있는 권리
2. 내가 잘 지키고 있는 책임
3. 내가 잘 못 지키고 있는 책임
4. 나에게 해주고 싶은 칭찬(최소 3가지)
5.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점(못 지키는 책임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받으러 간 동안 읽어봤더니 웃음이 절로 났다.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평소 게임을 많이 해 걱정했던 아이들은 모두 게임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했고,
청소를 자주 빠진 아이들은 청소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했다.
그 외에도 내가 지적하고 싶었던 내용이 다 적혀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허물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끊임 없이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첨언 1.
아이들이 쓴 내용 중 최고의 걸작은
M의 '이제는 화장실을 간다 하고 땡땡이 치지 않는다' 였다.
첨언 2.
모둠별로 모둠 활동할 때 잘 되는 점과 안 되는 점을 발표하게 했는데
5모둠에서 'Y만 활동을 하고 우리는 장난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정작 당사자인 Y는 선거관리위원회로 활동하느라 듣지 못한 상황.
점심시간에 Y에게 말을 전했더니
'걔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어요.' 라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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