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야기/민주적인 교실

20140304 권리와 책임은 함께 간다

아상블라주 2014. 3. 4. 20:38

교실에 들어온 아이에게 한 명씩 안부를 묻는다.

"잘 잤니? 아침은 먹었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침을 먹고 왔다.

나중에 온 네 명의 아이들은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조용히 학년협의실로 데려가 참쌀도너츠를 하나씩 주었다.

아침부터 선생님이 복도로 나가게 하자 긴장했던 아이들은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첫 하루열기를 가졌다.

이번 주는 내가 직접 하루선생님을 하기로 했다.

오늘의 주제는 우리반과 함께할 친구들 소개.

각종 기기와 장비들을 꺼내며 설명했다.

에그, 캠코더, 삼각대, 디지털카메라, 고릴라 삼각대, 스캐너, 외장하드, 애플TV, 아이폰, 노트북...

하나를 꺼낼 때마다 아이들은 무얼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이 친구들을 이용하여 우리가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니 눈이 동그래졌다.


수업을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제 누군가 '우리는 하루 종일 공부하지 않고 놀았다' 라고 했다면서?"

몇몇 아이들이 당황해하였다.

"너희들이 어제 배운 게 다 공부야. 선생님은 진짜 공부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어제 뭘 배웠냐고 물어봤더니 선생님 이름, 누리보듬의 뜻, 권리와 책임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이것 봐. 너희들은 참 잘 배웠어. 그럼 이번 시간에는 그 중에서 권리와 책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지금껏 어른들이 너에게 무얼 강조했을까? 그렇지, 책임이지. 평소에 이런 것까지는 굳이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생각했던 것들을 말해볼래?"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한 아이가 이야기했다.

"화장실 가는 거요."

"맞아. 화장실 가는데 허락 받으려면 부끄럽지? 손 들기도 그렇고."

"네. 민망해요."

이내 여러 대답이 나왔다.

"쉬는 시간에 노는 거요."

"보건실 가는데 꾀병이라고 의심해요."

"간식 먹는 거요."

"그래, 어른들도 너희들처럼 수업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어른들은 허락을 받을까? 안 그래. 그렇다면 왜 어른들은 그렇게 하면서 너희들은 그렇지 못하게 할까?"

곰곰히 생각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책임을 못 지켜서요?"

"응.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너희들도 충분히 할 수 있어. 화장실? 마음대로 가렴. 권리가 생겼으니 뭐가 생기겠니? 그래, 책임. 어떤 책임이 있을까?"

"조용히 가는 거요."

"남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하는 거요."

"맞아요. 그리고 아무 때나 가도 되지만, 가능하면 쉬는 시간에 가는 것도 너희들의 책임이지."

이런 식으로 앞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권리와 책임으로 정리했다.


그래서 우리반은 자잘한 규칙이 따로 없다.

권리와 책임에 따라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어른들처럼, 아이들 역시 가능하다.


시간이 십 분 정도 남자 즐겁게 '주인공을 찾아라' 놀이를 했다.

대형을 바꾸는 것도, 노는 것도 벌써 익숙해졌나 보다.

아직까지는 남녀가 편하게 섞이지 못하는데 차차 적응하겠지.


이어진 시간에는 '괴롭힘'에 대한 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겪었거나 주변에서 본 것을 간단히 말해보라고 했더니 제법 나왔다.

이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게 했는데

아이들은 힘들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힘들어했다.

심지어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터뜨린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지하철 폭행사건', '방관자 효과' 동영상을 보고 느낌을 나눴다.

아이들은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본 듯 경악해 했다.

그러나 나는 다음 시간에는 희망을 찾아 보자며 중간놀이를 가졌다.


당분간은 중간놀이 시간에는 무조건 아이들을 밖으로 보내려 한다.

밖에서 뛰어노는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아이들이 다 나가고, 아직까지도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Y를 달랬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중간놀이가 끝나고 함께 '3의 법칙' 영상을 봤다.

사람들이 모여 무거운 지하철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표정은 밝아졌다.

영상을 본 느낌을 공유하게 하자

"우리도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등의 반응이 나왔다.


그 때 첫 번째 약속을 제시했다.

'우리는 괴롭힘 상황에서 서로를 도울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고, 어려울 때는 도와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첫 번째 약속을 마무리 하고 어제 정하지 못한 것들을 정했다.

신발장 위치, 이동할 때 줄 서는 방법, 역할 분담.

어제보다는 회의 진행이 빨랐다.

이번 주를 잘 넘기면 다음 주부터는 아이들에게 넘겨도 될 듯 하다.


오후에는 몸을 깨우는 시간을 가졌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첫 번째 요가 자세를 배웠다.

나이는 어린데 벌써 몸이 굳은 아이들이 많았다.

더 많이 아이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어느 정도 몸이 풀어지자 아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자리 변경에 대하여 회의를 했다.

역시, 해마다 이 주제는 쉽지 않다.

결국 3월은 제비뽑기, 4월은 마음대로 앉아보는 걸로 일단락 됐다.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곧장 제비를 뽑고 자리를 옮겼다.

표정이 밝은 아이보다는 어두운 경우가 많았지만

그 전에 충분히 논의가 된 상황이라 불만이 나오진 않았다.


하루닫기를 하며 수업을 마쳤다.

처음으로 하는 거라 칭찬이나 사과가 자연스럽게 나오진 않았다.

그러나 Y의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들은 K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니

차차 자리가 잡힐 듯 하다.


하루 동안 아이들이 권리와 책임에 제법 익숙해졌다.

5교시까지는 수업 시작 시간을 지키지 못하더니

6교시가 시작할 때는 서로 시간이 되어간다고 말해주었다.

끝나고 바둑알과 장기알을 갖고 논 친구들은 남아서 교실 바닥에 떨어진 알들을 줍고 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을 해나갈 것이다.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