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야기/민주적인 교실

20140307 교실에 평화가 깃들기를

아상블라주 2014. 3. 9. 10:14

학습도우미(반장, 부반장 제도의 변형)를 선출하는 시간.

아이들에게 학습도우미의 역할을 물었다.


"선생님이 안 계실 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킵니다."

"선생님을 도와 일을 합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모범이 됩니다."


"학습도우미가 조용히 시킬 때 기분이 어떤데?"

"자기는 조용하지 않으면서 내 이름 적으니 짜증나요!"

"우리는 책임에 따라 선생님이 없을 때도 활동을 할테니

누군가 조용히 시킬 필요는 없겠다. 그치?"

"그러네요."


"우리가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선생님을 돕는 사람이 없었니?"

"많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원하는 친구가 선생님을 도우면 되지 않겠니?"

"네!"


"모범을 보이라고 하면 기분이 어땠어?"

"학습도우미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시키고 놀리고. 정말 싫었어요."

"많이 부담됐겠네. 그럼 이것도 별로다."


"그럼 학습도우미가 어떤 역할을 맡으면 좋을까?"

"친구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어려운 친구가 있을 때 옆에서 도와줍니다."

"우리반에 일이 생기면 돕습니다."


우리반을 위해 힘써줄 수 있는 친구는 손 들어 달라고 하니 아무도 들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부담이 가는 것과

친구들이 잘난 체 한다고 할까봐 걱정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일 테지.


"학습도우미를 하는 것은 여러분의 권리에요.

부모님에게 부담 가도록 하지 않을 거예요.

여러분 스스로 책임을 다하면 됩니다.

교통 봉사도 여러분들이 직접 서면 돼요.


그리고 아까 이야기 나눠서 알겠지만,

학습도우미가 잘난 척 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겠죠?

우리반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이니 걱정 마요."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하나씩 손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열 명이 되었다.

그동안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참기 힘들었을까.


후보자 기호 선정을 마치고 소견 발표를 하였다.

발표를 들은 아이들은 궁금한 점을 묻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학습도우미에 임할 지도 물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과 비밀의 원칙에 대한 선서를 시작으로

투표가 시작됐다.

개표를 하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에 아이들이 열광했다.


다섯 명의 학습도우미는 결정이 됐는데 마지막 여섯 번째가 같은 수의 표가 나왔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동수표를 받은 후보끼리 합의하면 어떻겠냐는 대답이 나왔다.

두 후보의 의향을 물어보니 재투표를 하겠다고 하였다.


재투표까지 마친 끝에 한 학기 동안 우리반을 위해 힘써 줄 

여섯 명의 학습도우미가 선출되었다.

그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다음 시간은 평화 수업.

네 번의 역할극이 필요해서 하고 싶은 아이들을 모집했다.

모두 열여섯 명이 아이들이 중간놀이 시간을 반납하고 역할극 연습에 몰입했다.

나는 대본을 나눠주고 몇 가지 주의사항만 안내하였다.

이후에 아이들 스스로 역할 배분과 연습까지 끝냈다.

(첫 역할극이었음에도 수준이 나쁘지 않았다.

반응이 괜찮은 걸 보니 올해는 꾸준히 연극을 해야겠다.)


따돌림 상황의 역할극을 보며 아이들은 감정 이입을 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괴롭힐 때,

한 명의 방어자가 있을 때,

세 명의 방어자가 있을 때,

모두가 방어자가 될 때.

네 번에 걸쳐 역할극을 진행하고, 역할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J의 상황을 공유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친구가 J와 앉기 싫었다는 것은 J의 오해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때 J가 정말 기분 나빴던 이유가

한 시간 동안 누구도 J에게 말을 걸지 않은 것임을 강조했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J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니 S가 다가가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도 J가 꿈쩍하지 않자

나는 J에게 다가가 마음을 달랬다.

다행히 금세 마음이 풀려 아이들과 어울려 지냈다.


마지막 약속은 내가 아이들 앞에서 선언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손을 들고 내 명예를 걸고 반드시 지킬 것임을 맹세했다.

-나는 체벌하지 않겠다.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들을 보면 반드시 돕겠다.

-나는 혼자 있는 학생들을 돕겠다.

-나는 괴롭힘 문제를 학생들이 알려올 때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


오늘까지 총 네 가지 평화 약속이 정해졌다.

1. 우리는 괴롭힘 상황에서 서로를 도울 것이다.

2. 우리는 괴롭힘이 있을 때 서로에게 알릴 것이다.

3.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할 것이다.

4. 선생님은 평화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이 약속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서로 아끼며 살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주일의 마지막은 함께 회의하는 시간이다.

그동안 불편했던 점, 새롭게 하고 싶은 것, 그 외의 제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두 가지 안건이 나왔다.

중간놀이 시간에 강제로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에 대한 불만.

교실 앞 액자의 문구를 바꾸자는 제안.


중간놀이 시간에 대한 불편한 점을 말하게 했더니

밖에 나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내가 처음에 그 규칙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말했다.

건강, 성장, 함께 노는 경험.


아이들 역시 필요성을 충분히 느낀 것 같아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너희들이 아직 함께 노는 방법을 모른다는 이유가 가장 큰 것 같으니

당분간 선생님과 함께 중간놀이 시간마다 놀이를 해보는 것은 어때?"

환호성이 일더니 만장일치로 의견이 채택되었다.


액자의 문구는 시간이 부족해 공모를 통해 정하기로 했다.


종례 시간에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했더니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된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미안. 사실 나는 조금 부담스럽긴 해.

하지만 나 역시 기대되는 건 마찬가지야.

다음 주도 행복하게.


*평화수업은 서울평화샘모임에서 정리한 내용을 참고하여 진행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