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야기/마음 성장하기

20140217 마지막 시험

아상블라주 2014. 2. 17. 23:49

오늘로 교과 수업은 끝이다.

기뻐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시험이 있다고 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아이들은 경악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시험 문제를 전했다.

교실에 남은 물은 14,

우리반은 25.

모든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물을 나눠주는 것.

 

너희들이 배운 모든 것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해보라고 했다.

선생님은 질문도 받지 않고 도움도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웅성거리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나는 교실 구석으로 가서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먼저 B이가 모둠별로 하나씩 해결책을 내자고 제안했다.

이어 Y가 모둠-분단-전체 순으로 해결책을 모으자고 했다.

 

대부분이 Y의 의견에 찬성했는데

H이는 분단별로 하는게 좋을 것 같다며 반대했다.

몇 명의 아이들이 H이를 설득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해결방법이나 진행순서에 대해 토론을 했다.

서로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1분단은 분단별로,

2, 3분단은 모둠별로 정하기로 했다.

 

모둠별로 해결책을 하나로 하는데 약 3,

분단별로 의견을 모으기까지는 약 5분이 걸렸다.

내가 놀랄 정도의 속도였다.

우리반이 이렇게까지 성장했나?

 

아이들도 자신들의 모습이 놀라웠는지 상기된 표정이었다.

Y가 자원해서 전체회의 진행을 맡았고

E이가 서기로서 돕기로 했다.

 

1분단 : 먹고 싶은 사람끼리 두 명씩 짝을 지어 한 개씩 먹기

2분단 : 한 통에 전부 모아서 필요할 때 먹기

3분단 : 모둠별로 두 병씩 나눠주기

 

1분단과 3분단의 의견이 비슷하니 합쳐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회의 진행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사소한 부분에서 옥신각신하며 속도가 늘어졌다.

어느덧 쉬는 시간이 지났다.

 

Y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쉬는 시간인데 계속 할 거예요, 쉬고 할 거예요?"

"그냥 해요."

"그럼 화장실 갈 사람만 다녀오세요."

제법 많은 수가 나가자, Y

"그냥 55분까지 쉬도록 합시다." 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1, 3분단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더니

금방 의견을 합쳤다.

저리 쉽게 하는 것을 왜 회의에서는 어려워했을까.

 

쉬는 시간이 끝나가자 서로 회의를 시작하자며 자리에 앉았다.

Y가 회의를 다시 진행하기 위해 앞으로 나오는데

H이가 여전히 실뜨기를 하자 쉬는 시간이 끝났다고 들어가라고 했다.

H이는 계속 실을 갖고 놀았고 그 모습을 본 Y는 순간 H이 손에 있던 실을 빼앗았다.

울컥한 H이가 Y를 때렸고, Y도 폭발해 H이에게 달려들다가 참았다.

손을 꼭 쥐며 부르르 떠는 모습이 말 그대로 온 힘을 다해 참는 모습이었다.

 

Y는 굳게 입을 다문 채로 회의를 시작했다.

여전히 진행은 더디었다.

점점 발언권을 얻지 않고 말하는 경우가 늘었다.

아이들이 손을 들어 의견이라도 알아보자고 요청했다.

 

그러자 Y는 이렇게 말했다.

"손을 들면 서로 적대관계로 될 것 같아 손을 들게 하지 않았어요."

결국 손을 들어보기로 했고,

1, 3분단의 안, 2분단의 안, 어떻게 해도 상관 없다

이렇게 세 개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여기서도 언쟁이 있었다.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것은 회의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까

우리반이 행복해지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걔네들에게는 그것도 선택이니 그렇게 해야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의견도 존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던 중 Y는 너무 힘들다며 진행을 포기하였다.

사회자를 새로 뽑자, 그냥 손 들고 이야기하자 옥신각신 하다가

K이가 그냥 자기가 진행한다고 나왔고,

J가 도와준다며 나섰다.

 

그럼에도 큰 진전은 없었고,

그렇게 주어진 시간이 끝났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시험.

희망에서 시작하여 절망으로 끝났을 때의 좌절감을 맛본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며 느꼈던 점을 공유하도록 했다.

진행하느라 고생했던 Y를 다독이는 아이,

마지막 회의일 거라 생각해서 잘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속상하다는 아이,

그래도 잘했다며 격려하는 아이도 있었다.

 

"얼마나 속상하겠니.

그러나 정말 잘했다.

처음에 너희들이 보여준 모습은 정말 놀라웠어.

 

사실 이 문제는 어른들도 풀기 힘들어.

너희들에게 물은 귀하잖니?

어른들에게 재화를 나눠보라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럼에도 너희들이 나중에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연습해본 거라 생각하자.

그리고 선생님은 이 정도면

충분히 시험을 통과한 거라 생각해.

장하다.

정말 많이 성장했어."

 

그럼에도 풀이 죽은 아이들.

내일은 아이들이 기운 차릴 수 있도록,

자신들의 능력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해야겠다.

자신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었으면.

 

덧붙이는 이야기.

시험이 끝나고 Y가 내게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멈춰'를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H이와 따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겠다 대답했고 Y가 승낙하자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둘과 함께 이야기를 진행했다.

 

사실 Y는 회의를 진행하면서 쌓인 분노와 짜증이

H이의 행동으로 인해 폭발한 것이었다.

 

Y가 감정을 추스린 후에 그런 설명을 해주자 그런 것 같다며 인정했다.

그리고 되려 H이에게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