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야기/마음 성장하기

20131219-20 '나쁜 아이'가 있을까?

아상블라주 2014. 2. 9. 11:06

20131219-20 '나쁜 아이'가 있을까?


"울지마, 지금부터라도 잘 지내면 되잖아."

그 말에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던 아이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19일 아침, 남자아이들에게 운동장에서 활동하기를 부탁하고 여자친구들과 교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17일 저녁에 있었던 카톡 사건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그것은 표면적인 사건일 뿐 진짜 이유는 여자아이들이 갖고 있는 언제 따돌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남들 눈에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사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미리 4명의 아이들과 따로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첫 번째는 17일에 카톡방을 만들었던 CC - 내성적이며 항상 친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다. 두 번째는 카톡방에서 다른 친구를 협박했던 DD - 매우 내성적이며 친구들에게 순수하다는 평을 듣는 아이다. 세 번째는 평소에 말과 행동이 거친 AA이. 네 번째는 성격이 쾌활하고 장난끼 넘치는 BB이. CC이와 DD이에게는 선생님이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자리를 마련할텐데 그 때 솔직하게 말을 해야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고, AA이와 BB이에게는 너희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분명히 나올텐데 참고 들으며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이야기했다.

여자아이들 모두와 이야기를 시작하며, 이 자리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며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게 돕는 자리임을 강조했다. 처음은 17일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왜 그랬는지, 지금은 어떤 감정인지 묻기도 하고 대답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자 마음 속에 있는 불안함과 서운함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동안 한 번도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소위 '잘나가는' 아이에 대한 무서움을 토로하기도 했고, 친구가 나를 배신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남자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어가자 이번 시간에 대한 소감을 나누게 했다. 답답한 마음이 풀리고 기분이 나아졌다는 아이가 있는 반면, 친구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는 아이, 이런 시간을 왜 갖는지 모르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이 시간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하니 10명의 아이가 손을 든다. 마음이 더 답답해지거나 감정이 나빠졌다는 아이는 친구들이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BB이와 AA이를 포함해 3명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10분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시간이 별로 없어서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갈게요. 여기서 몇몇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다툼이 생길 때마다 AA이에게 이르는 일이 있는데 왜 그랬을까요? 그래서 AA이가 끼어들면 결국 나쁜 사람은 AA이가 되고. AA이가 얼마나 억울해 하는지는 아니?"

그 말에 AA이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강하게 보였던 AA이의 눈물이라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또 아까 친구들 중에서 이것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럼 여기서 EE가 따돌림 당할 때 도와준 친구가 있나요?"

두 명의 친구가 조심스럽게 손을 든다. 그러나 EE가

"저는 그 때 생각을 하기도 싫어서 머릿 속에서 지워버렸어요."

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자 다들 당황해 했다. 잠시 후 한 명씩 미안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또 다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우는 아이가 우는 아이를 달래준다. 달래주던 아이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내 눈에도 어느 새 눈물이 맺힌다. 가슴 가득 감정이 차올랐지만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마음을 읽어준다. 그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이 와서 달래준다. 나는 또 다른 아이에게 다가가 눈물이 나올 수 있게 도와준다.


여자 아이들의 눈물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남자아이들을 학년 협의실에 들어가 쉴 수 있도록 데려갔다. 그리고 다시 교실에 돌아왔는데도 아이들의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 눈물이 나온지 30여분이 지나자 조금씩 웃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느낀 점이나 생각을 이야기하는 기회를 갖게 하였다.

"지금까지 AA이를 나쁘게 봐서 미안해."

"EE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자리에서 울고 있는데 EE가 와서 울지마, 지금부터라도 잘 지내면 되지 라고 이야기 해줬어요."

"EE야, 6학년이 되어 같은 반이 되면 내가 널 지켜줄게."

"우리 남은 시간 얼마 되지 않지만 행복한 시간,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어."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마지막으로 나의 고백이 이어졌다.

"선생님 역시 EE가 따돌림 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강제로 멈추라고 해서 따돌림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 아이들이 받을 상처들 때문에 강하게 개입하지 않고 천천히 풀어갔어요. 그 과정에서 EE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정말 미안합니다. 선생님이 더 도울 수 있었는데."

내 눈에도, 아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 날 오후, 교육과정 반성회가 있어 5시 넘게까지 회의를 했는데 교실에 돌아와보니 BB이와 AA이가 편지를 쓰고 있었다. 미처 다 쓰지 못해 다음 날까지 쓰고 나에게 전해줬다. 그리고 아직까지 여자애들끼리 따로 그룹을 형성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며 지내고 있다.


나는 지난 2일간 있었던 일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나와 아이들은 모두 잘못이 있고,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말을 하고 싶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AA이를 나쁘게 보고 DD이를 착하게 본다. 하지만 정말 깊숙히 들어가 본다면 당연하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쁜 아이'는 정말 있을까?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