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유럽에서 살다

<46일차> 금보다 귀한 선물

아상블라주 2015. 7. 31. 23:57

고요한 아침을 뒤흔드는 음악 소리에 잠이 깼다.

Ann의 아들 Ravn이 아침 일찍부터 Youtube 시청이 한창이었다.

그는 9살이지만 영어로 된 방송을 즐겨본다.

북유럽 사람들은 이렇게 문화 콘텐츠를 통해 영어를 익히는 경우가 흔하다.

여전히 영어는 패권을 쥔 언어다.

오전 9:08  Map


Ann이 아침식사를 차려주었다.

이렇게 아침을 챙겨먹는 건 처음이라며 그녀가 웃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종종 이렇게 차려 먹어도 좋겠다고 했다.


잊은 게 없는지 확인하고 집을 나섰는데 Ann이 소파에 뒀던 옷을 챙겼냐고 물었다.

아차. 얼마 전에야 산 옷인데 잃어버릴 뻔 했다.

여정이 2/3이 지나는 동안 배낭이 제법 가벼워졌다.

선물을 주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고.

그럼에도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떠날 때 소박하게 짐을 챙겼음에도 과한 모양이다.


셋이 함께 시내를 돌아다녔다.

한 손으로 엄마의 손을 꼭 잡던 Ravn이 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Ann, Ravn 그리고 나.

셋이 손과 손을 이어 한 마음이 되어 돌아다녔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장난감 가게.

Ravn이 모아둔 돈으로 장난감을 사기 위해서였다.

한 바퀴 둘러보더니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나 보다.

그 다음 들린 곳은 귀금속을 파는 상점이었다.

여기도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실내 인테리어를 위한 가게로 갔다.

한참을 뒤적이더니 한 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금색의 작은 장식품이다.

Ravn은 금이라며 한참을 좋아했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금을 만지작거리던 Ravn이 나에게 하나를 넘겼다.

이것을 보며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정말 여름이다.

이렇게 좋은 날은 여행 중 손으로 꼽힐 정도다.

Ann이 자신이 좋아하는 공원이라며 나를 안내해주었다.

바다가 보이는 널찍한 공원에서 사람들이 편히 앉아 쉬고 있다.



그 옆의 공터에는 모래 조각들이 서 있었다.

이 작품의 이름은 'Young Mind Forever'

젊음은 신체가 아닌 마음의 나이라는 작가의 설명이 적혀 있었다.




Kristiansand에서 가장 맛있다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하나씩 집고 운하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햇빛에 일광욕이 빠질 수가 없지.



바로 옆 어시장에 가서 한 바퀴 둘러봤다.

큰 게를 만지기도 하고 갓 훈제한 연어도 맛봤다.

언제나 살가운 그녀에게 모든 직원이 친절하게 대한다.


작별의 인사를 나누려는데 Ravn이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 역시 그를 안아 하늘 높이 올렸다.

낯선 이에게 이렇게 폭 안겨주는 그가 고맙다.

Ann과도 깊은 포옹을 나눴다.

그녀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활짝 핀 Ann과 어정쩡한 나의 웃음이 대조된다.

너무나 소중한 인연.

여기서 끝이 아니리라 믿는다.

오후 12:54  Map



그들과 헤어지고 어디를 갈까 고민했다.

예전 무장지대였던 옆 섬도 가고 싶었지만 기차 시간에 마음이 급해 제대로 둘러보지 못할 것 같아 어시장 옆 식당으로 갔다.

Ann이 추천해준 곳이 어느 곳일까 둘러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한 곳에 자리잡았다.

햇빛이 가득한 만큼 사람도 붐볐다.



여행을 시작한 후 가장 내 입맛에 맞는 생선요리였다.

보기는 그리 좋지 않지만 생선 위에 오이를 약간 올리고 양념을 찍어 먹으면 깔끔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식사를 마치고 그 앞 운하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Ann이 안내해준 공원으로 가 다시 멍하니 앉았다.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는 것보다 이런 쉼이 나에게 맞다.



처음 도착했을 땐 몸이 무거웠는데 이제는 아쉬움에 마음이 무겁구나.

다음 여행지에서는 또 다른 인연을 만날 테니.



*다음 날 Ann이 보낸 사진.

혼자 비빔밥을 해서 먹었다며 자랑했다.

한국음식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했다.



Stavanger로 가는 동안 쉽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내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소란은 도가 지나쳤다.

처음엔 젊음 특유의 기운을 느끼며 기분이 좋았지만 갈수록 숫자가 늘어 나중엔 예닐곱이 함께 떠들었다.

한 아주머니가 훈계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왁자지껄이다.

노르웨이에서 소음으로 짜증이 나는 것은 처음이다.



Stavanger 역을 나오자마자 말끔하게 씻은 호수가 반긴다.

숙소를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지도를 보며 한참을 걸었다.

숙소라고 표시된 곳에는 웬 병원이 서 있었다.

후기에서 이건 호스텔이 아니라 병원이라고 투덜댔던 사람이 생각나 좀 더 들어가봤다.

병원의 한 쪽 부분을 숙소처럼 쓰고 있었다.

호스텔 특유의 열린 분위기는 전혀 없지만 깔끔함은 마음에 들었다.



병원 옆에는 응급환자 이송용 헬기를 볼 수 있었다.

산이 많은 곳이니 헬기는 필수겠구나.


저녁도 먹고, 잘 준비까지 마쳤는데 4인실에 여전히 나 혼자다.

편히 쉴 수 있으니 만족하자고 생각할 무렵 한 청년이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배가 고파 보여 얼른 바나나를 주니 고맙다며 먹었다.


Sam은 반 년간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 온 호주인이다.

이제 학기가 끝나 집으로 가기 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나와는 일정이 반대다.

나는 내일 Preikestolen, 모레 Kjeragbolten을 가고 그는 반대로 간다.

날씨가 좋지 않다는 기상예보에 둘 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체력을 비축해두자며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