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브라우저로 보기 힘드시다면 첨부파일의 PDF 파일을 받아가세요. ^^
Ⅰ. 서론
개인이냐, 구조냐. 이 둘 중 어떤 것을 분석의 출발점으로 하느냐에 따라 사회학이론을 크게 나눌 수 있다. 콜린스(Collins)는 제 3의 길-상황에서 출발하자고 말한다. 상황을 완전히 간과한 채 개인을 분석한다면 개인의 고유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상황에서 시작하여 개인의 분석으로 발전시키면 개인의 변화 조건과 과정, 결과까지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확대하면 대규모 거시사회학적 변동도 설명할 수 있다. 개인은 계속해서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각각의 상황마다 영향을 받으며 구성된다. 개인마다“시간과 상황의 혼합물인 상호작용의 사슬을 통과하는 경로”1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개인은 서로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콜린스는 자신의 이론을 상호작용 의례의 사슬(Interaction Ritual Chains)이라 부른다.
이 이론의 관점에서 학교를 바라보면 학교라는 구조 또는 교사와 학생 집단에 초점을 맞출 때와는 다른 맥락이 보인다. 구조와 집단이라는 큰 범주로 묶어버리면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속성이 상황을 중심으로 바라볼 때에는 주목할 만한 가치를 보인다. 학교의 장(場)에 참여하는 이는 다양한 상호작용의 사슬을 통과하며 정서적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하고 소모하기도 한다. 개인마다 학교에 오기 전 겪은 상황이 다르고, 같은 학교 안에서도 각자 다른 상황을 거치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참여자 모두는 다르게 구성된다. 교사, 학생은 어떤 특정한 기능이나 역할 하나만을 지닌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정서적 에너지가 상승되는 상황에 참여하려 하며, 학교를 특정한 틀을 가진 구조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기관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본 연구는 간략하게 주요 용어를 중심으로 상호작용 의례의 사슬 이론을 정리하고, 그 관점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 의례를 분석하려고 한다. 우선 거시적으로 학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의례를 분류하여 학교가 일반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기능하는지 고찰하고, 그 중에서 학교의 존재 이유라고 평가받는 핵심 의례인 수업과, 대표적인 교사 간의 의례인 교직원 회의를 자세히 분석하여 여태껏 행해진 해석 관점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각 의례가 성공하는 경우와 실패하는 경우를 비교하여 학교의 다양한 상황에서 참여자가 정서적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이론적 배경
콜린스의 이론에서 핵심이 되는 용어는 의례(Ritual)이다. 의례의 이론화 과정에서 콜린스는 뒤르켕과 고프먼에게 큰 영감을 받는다. 뒤르켕은 “의례는 성스러운 대상을 앞에 두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행위의 규칙”(Durkheim, 1912/1965: 56)이라고 하고, 고프먼은 “비록 사사로운 것 또는 세속적인 것이라 해도 개인에게 특별한 가치를 지닌 대상과 직접 마주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행위가 지닌 상징적 의미를 설계하고 조절해야 하는 활동”(Goffman, 1956/1967: 57)이라고 말한다.2 콜린스는 여기에서 좀 더 발전시켜 의례를 “일시적으로 공유하는 실재를 창조하는 정서와 관심사에 초점을 집중시켜 유대와 집단 소속의 상징을 창출하는 기제”라고 정의한다.3
콜린스의 정의에서 그가 주의를 기울이는 의례의 조건을 알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의례를 구성하는 성분과 그에 따른 산출물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그림 1> 상호작용 의례
<그림 1>4은 상호작용 의례의 과정을 그린 것이다. 상호작용 의례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요 성분 또는 촉발 조건으로 구성된다.
1. 신체적 공현존: 두 사람 이상이 같은 장소에 물리적으로 함께 있어서 그들이 의식적으로 주목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미시적인 수준에서 경험할 수 있는 미세한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얼굴 표정의 변화, 몸의 기울기, 시선의 집중 등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인식을 강화한다.
2. 외부인 진입 장벽: 상황에 따라 명확성이 달라지지만 의례에는 외부인을 구별하는 경계선이 있다. 의례가 지닌 이런 배타성 때문에 유대가 더욱 강화되기도 하고 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되기도 한다.
3. 관심의 초점 공유: 의례에 참여한 사람들은 의도적인 방식이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공동으로 대상이나 활동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에 대해 소통함으로써 각자 상대가 집중하는 관심의 초점을 인식하게 된다.
4. 정서의 공유: 참여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나 정서적 경험을 서로 공유한다. 감정은 단기적이고 정서는 장기적이다.
이 성분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의 초점 공유’와 ‘공통된 정서의 공유’로, 이 둘은 서로를 강화하는 작용을 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동 활동에 더 팽팽하게 집중할수록 서로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더 잘 알게 되고, 서로의 인식을 더 잘 알게 될수록 그 사실이 각자의 인식을 지배하며 더욱 강렬하게 정서를 공유하게 된다.5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 참여자들이 몰입하는 순간을 집합적 열광이라 부른다. 이는 행복한 흥분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지만, 그 감정이 어떤 것이든 더 높은 수준으로 정서적 분위기에 빨려 들어가는 일반적인 조건을 말한다.6 의례가 성공할 경우 참여자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1. 집단 유대: 집단 성원으로서의 소속감.
2. 개인의 정서적 에너지 생성: 기쁨, 자신감, 의기충천, 힘, 열정, 진취적 행위 의욕.
3. 집단을 표상하는 상징: 상징적 표지 또는 자신들이 집단 성원임을 떠올리게 해 주는 집합적 재현물(아이콘, 구호, 몸짓, 관념 등).
4. 도덕 감정: 집단을 신봉하고 상징을 받들어 모시며 내부자의 위반으로부터 집단을 지키려는 정의의 감각. 이와 함께 도덕적 악 또는 집단 유대와 그 상징적 표지를 거스르는 부도덕에 대한 감각.7
<그림 1>은 상호작용 의례가 성공적일 때의 과정이다. 의례가 실패할 경우, 즉 관심의 초점과 정서가 공유되지 않는 경우에는 위 도식 전체가 바뀌게 된다. 의례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중요 척도는 정서적 에너지의 변화 방향이다. 의례의 성공 여부에 따라 정서적 에너지가 충전되기도 하고 소모되기도 하기에 “개인은 자신에게 가장 강렬한 정서를 충전시켜주는 의례에는 끌리고, 그렇지 못하거나 사람들이 거부하는 의례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8
형식에 따라 공식적 의례와 자연적 의례로 나눌 수 있다. 공식적 의례는 일련의 틀에 박힌 행위로 진행되는 형식적인 의식을 뜻하고 자연적 의례는 참여자가 자연스럽게 합류하여 이루어진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다시피 공식적 의례에서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인사말을 건네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집단 행위를 한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가 진정으로 정서를 공유하고 공동 참여의 감각이 강화되면 공식적 의례는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참여자 대부분은 정서적 에너지가 감소함을 느끼며 의례가 형식적이고 공허하다고 느끼게 된다. 자연스럽게 관심의 초점이 모이고 정서가 공유되어 시작하는 의례는 쉽게 성공한다. 하지만 의례가 정형화되지 않은 만큼 상징이 만들어지거나 후속 집결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므로 집단의 유대가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참여자들의 집합적 열광이 높아 성공한 의례라 보이지만 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되는 경우도 있다. 정서적 합류가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의도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실제로 이루어진 관심의 공유와 정서적 자극의 정도보다 집합적 열광이 더 높아 보일 때를 강요된 의례라고 한다. 친목을 위한다는 구실로 하는 뒤풀이 자리에서 직업적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참여자는 의례를 통해 정서적 에너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적 합류가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에너지를 투입한다.
한편, 같은 상황의 참여자라도 초점 집중과 정서적 전염이 이루어지는 정도와 참여자가 집단 상징에 강하게 애착하는 정도에 따라 정서적 에너지의 변화가 다를 수 있다. 이런 변이 때문에 상호작용은 계층화된다. 어떤 사람은 의례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소극적이거나 저항적이 된다. 어떤 사람은 관심의 중심에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주변으로 물러나거나 배제된다. 이것이 권력과 신분의 두 차원이다.9 권력 의례의 초점은 명령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상사의 결정적인 관심은 명령을 내리는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예를 갖추는 데 있다. 명령을 받는 사람들은 강제되는 상황 그 자체로 소외된다.10 권력 상황에서는 한 사람이 정서적 에너지를 얻으면 상대는 정서적 에너지를 상실한다.11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지배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될 것이고, 명령을 받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나약함, 좌절감, 두려움)과 지배자에 대한 분노나 강한 부정적 감정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생길 것이다.12
2. 분석
콜린스는 “일상생활은 어떤 상징에서는 정서적 의미를 충전하고 어떤 상징은 방전되게 내버려두면서 상호작용 의례의 사슬을 통과하는 경험으로 이루어진다”13고 말한다. 일상생활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정서적 에너지를 떨어뜨리는 곳에 불과하다면 교사와 학생 모두 다른 상황에서 얻은 에너지를 소진시키며 정서적 에너지가 낮은 채로 지내게 된다. 집단의 유대는 점점 느슨해지고, 상징은 부정적인 상황을 떠올리게 하여 더욱 정서적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최근 OECD의 통계 자료14나 언론 보도를 보면 이미 그런 경향이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학교에서 행해지는 여러 종류의 의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학교의 의례를 공식적 의례와 자연적 의례로 나누고, 참여자들의 구성에 따라 분류하였다.
연구표본을 구하기 어려워 연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논문을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자는 총 네 학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데 그 중에서 연구자가 분석한 학교는 전라남도 목포시의 한 초등학교(연구자는 해당학교에서 2012학년도부터 2014학년도까지 근무하였다. 이하 A초등학교)이다. 일반적으로 중급 규모라고 분류되는 크기의 학교라 다양한 상호작용 의례를 관찰할 수 있고, 분석 결과를 다른 사례에 적용하기 수월하다고 판단했다. A초등학교는 학급 수 22개(특수반 2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504명의 학생과 28명의 교원(교장, 교감, 수석교사, 부장교사, 초등교사, 특수교사만 포함)이 다니고 있다(2015년 3월 1일 기준).
의례 상황 의례 참여자 구성 | 공식적 의례 | 자연적 의례 |
교사-학생 | 수업 외 생활 및 생활 지도 | |
교사-교사 | 교직원 회의, 동학년 회의, 부서별 회의, 친목회 | 연령별 모임, 관심사별 모임, 성별 모임17 |
학생-학생 | 전교 학생회, 학급회의 | 또래집단 |
교사-학부모 | 학부모 총회, 교육과정 설명회, 운영위원회 | 상담 |
<표 1>을 살펴보면 참여자 모두 학교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공식적 의례에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교육활동을 통해 참여자의 정서적 에너지를 상승시키는 장(場)인 학교는 공식적 의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에야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기대가 무색해질 만큼 최근 학교에서 행해지는 의례 중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과 중 학교를 둘러보면 “집합적 열기도 낮고,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환호 소리도 없고, 정서적 합일을 느낄 수 없거나 실망스러울 정도로 낮은”18 상황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의례가 끝난 후에도 집단 유대감이 거의 또는 전혀 생기지 않고 학교 공통의 상징인 교기, 교가 등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 조롱하기도 한다. 오히려 참여자의 정서적 에너지가 높아지는 순간은 의례가 끝났음을 선언할 때이기도 하다.19
학교의 존재 목적인 수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례가 실패하는 과정이 더욱 선명해진다. 수업 시간에 맞춰 교사가 교실로 들어선다. 학생들은 앉아 있는 자리가 정해져있고 교사가 서있는 위치도 정해져있다. 문이 닫히면 누구 하나 쉽게 교실에 들어가거나 나가기가 어렵다. 심지어 교장조차도. 수업이라는 상황에 집단이 집결되고 외부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도 두텁게 쌓인 것이다. 교실 안의 개인은 모두 같은 행위와 사건을 경험한다. 반장 또는 학급 대표의 구령에 맞춰 참여자들이 서로 인사를 한다. 교사가 판서한 내용을 학생이 공책에 받아 적는다. 교사의 지시에 따라 활동지를 작성하거나 모둠별 활동을 한다. 때때로 함께 웃기도 하고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지기도 한다. 의례의 구성 성분-신체적 공현존, 외부인 진입 장벽, 관심의 초점 공유, 정서의 공유-이 모두 갖추어진 것 같은데 왜 집합적 열광이 일어나지 않고 실패하는 것일까.
의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끼리 관심의 초점과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위의 상황을 얼핏 살핀다면 두 조건 모두 충족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20
수업 상황에서 모두가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관심거리는 무엇일까. 바로 수업 내용이다. 존재 자체가 수업의 상징인 교사조차도 수업 내용에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다. 수업 중 내선전화가 울리고, 학생들이 하는 장난에 신경 쓰이기도 하며, 평가 범위에 맞춰 진도를 나가야한다는 압박감도 든다. 학생 역시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의 설명은 분명히 국어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들리고, 모둠별 활동을 할 때 옆 친구와 다투기도 하며, 학교를 마치고 무엇을 하며 놀면 좋을지 고민한다.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 모두 수업 내용에 흥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수업 내용을 교사는 가르쳐야하는 것, 학생은 배워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정서적 에너지가 높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강제한 의무와 필요성에 의해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타협한 상황인 것이다. 이렇듯 한 장소에서 약속한 듯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만 각자의 관심은 다르다.
같은 상황에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에 있을 때, 참여자는 정서적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극이 일시적으로 주어지고 서로 공유되지 않는다면 한순간의 변화에 그칠 뿐이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때때로 웃음소리가 들리고 학생들이 호기심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볼 때도 있다. 그런 긍정의 표현이 대부분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갈 뿐, 리드미컬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정서가 공유되지 않는 것이다. 공통의 관심을 지닌 채 행위를 하며 집단이 같은 정서를 나누는 경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 리듬감 있게 교차되어 일어나고, 그것이 반복되어 점차적으로 강화될 때 집합적 열광이 나타나는데 학교의 핵심인 수업에서는 처음부터 삐꺼덕 거리며 불협화음을 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실패한 의례를 겪으며 감소한 정서적 에너지는 성공적인 의례를 통과하면 채워지는데 실패가 반복되면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좋은 “영향을 받지 못하고 평범한 감정에 머물거나 더 나쁜 경우는 질질 끌려간다는 느낌, 지루하고 구속당하는 느낌, 심지어는 우울증, 피곤함, 도망가고 싶은” 수업이 생긴다. 수업의 상징-교사, 교과서, 공책 등-만 접해도 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극한으로 치닫는다면 개인이 의례를 위반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정적인 정서를 공유하는 이들이 수업의 상징을 훼손하며 집합적 열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21
모든 수업이 실패하지는 않는다. 성공한 수업 의례를 분석하면 변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단위 수업만 분석해서는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서른 명 정도의 다양한 개인이 각자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수업에 참여하는데 아무런 기반 없이 단위 수업 시간 40분 만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정서적 합류가 이루어져 의례가 성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성공한 수업 의례는 결국 하나의 사례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전후 맥락을 파악할 때 분석의 가치가 있다.22 여기서는 연구자의 경험에 비추어 긴 호흡으로 수업 의례를 분석하고자 한다.
3월이 되면 학교는 어수선하고 들떠있다. 한 교실에 교사 한 명과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의 학생이 모이는데 각자 다른 데 관심이 있다. 담임선생님은 누구일까, 어떤 학생들이 들어올까, 친한 친구는 누가 있을까, 나보다 잘난 아이가 있을까, 이번에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등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가장 처음으로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모일 때는 교사가 학생 전체를 향해 첫 마디를 할 때이다. 그때 교사의 표정과 말투, 내용에 모두의 이목이 쏠린다. 이 짧은 순간에 교사와 학생 모두 앞으로 일 년의 생활이 어떨지 판단하고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 교사는 그 판단과 정서를 표상하는 상징이 된다. 연구자의 경우 참여자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도록 첫 만남을 준비하고, 교사가 중심이 아닌 참여자 전체가 대상인 상징을 만든다. ‘누리보듬’이라는 학급의 별칭이다. ‘세상을 따스하게 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23
일주일 정도는 학생들이 ‘공부’라고 여기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미 교과서를 비롯한 공부에서 흔히 쓰이는 것들이 부정의 상징이 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누리보듬’이라는 공동체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데 집중한다. 다양한 놀이를 하고, 함께 규칙을 세우고, 학급의 환경을 돌보다보면 어느새 하나의 집단이 되어 집합적 열광을 보인다. 이전 학교생활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상징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징을 구성한 것이다.
학생이 정서적 에너지가 높아질 것이라 예상하여 기꺼이 수업 의례에 참여할 때 ‘공부’를 시작한다. 집단의 유대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의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먼저 학생들과 함께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학생들에게 붙임 종이에 공부에 대한 의견을 적어 칠판에 붙이는 활동을 하면 부정적인 쪽이 금세 빽빽해진다. 종이를 보며 공부가 정말로 부정적인 행위에 불과한지, 아니면 긍정적인 면도 있는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들도 공부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알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정서적 에너지가 낮아지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에 위반하고 회피하는 것이다.24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창출한 부정적 상징의 힘에 짓눌리지 않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시간표를 작성할 때는 국어, 수학 등의 과목을 적지 않고 지구, 연극과 같이 주제나 활동으로 작성한다.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수업의 내용에 관심을 갖는다. 수업을 시작하면 학생이 먼저 이번 수업은 무얼 하냐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묻는다. 교사는 교과서에 나열된 내용을 전달하지 않고 자신의 관심 분야이기 때문에 즐겁게 공부한 내용을 나누고 관련 활동에 학생들을 참여시킨다. 학생들도 교사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는 수업 내용에 대한 그의 관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일주일 동안 충전한 정서적 에너지도 큰 역할을 한다. 학기 초에는 낮은 정서적 에너지로 움츠린 채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워하던 학생도 예전보다 수월하게 몰입하고 즐기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목소리는 좀 더 크고 명확해지며 몸을 움직이는 범위도 무척 넓어진다.
이제 성공적인 수업 의례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추게 된 것이다. 교사와 학생은 수업 내용이 너무나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나누고 싶다. 생기를 잃고 박제되어 전달하고 받는 지식이 아니라 각자가 구성하는 생동감 넘치는 지식이 된 것이다. 수업 상황에 참여한 개인은 다음과 같은 리듬 안으로 합류한다.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은 흥미진진하여 관심이 간다. 여기에는 자신을 지지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며 함께 한다는 느낌을 주는 교사와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더욱 수업에 참여하고 싶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점점 강화되며 결국 집합적 열광으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의례를 통과하며 다양한 모습을 지니게 된 개인이 모인 집합에 불과했던 학급이 이제는 같은 상징을 공유하는 유대 깊은 집단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집단에서수업 의례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집단에 비해 자주 정서적 에너지가 충전되는 경험을 겪고, 그 에너지가 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상징에 축적됨으로써 수업 의례가 성공할 가능성을 점점 높이게 된다.25
수업 의례의 비교 분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의례 자체가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참여자들이 의례의 구성 성분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언제나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수업뿐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의례 역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자는 실패한 의례 중 참여자의 구성 관계가 달라질 경우에도 변화가 가능한지 시도해보았다. 다른 구성 관계의 경우 수업 의례와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교사 간의 경우에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였다.
A초등학교에서 행해지던 교사 간의 의례는 실패하거나 강요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교직원 회의는 관심도 정서도 공유되지 않는 최악의 의례였다.26 매주 월요일 오후 네 시부터 한 시간 가량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상호 간의 인사가 있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라는 명령에 맞춰 참여자는 서로에게 인사를 한다. 교무부장이 일어나 “전달 내용이 있는 선생님께서는 말씀해주십시오”라고 말하면 용무가 있는 교사가 돌아가며 발표를 한다. 모든 교사의 차례가 끝나면 교무부장이 전달사항을 이야기한다. 그 후엔 교감, 교장이 차례대로 발언한다. 모든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표정은 굳은 채로 있고 때때로 필요한 내용을 일지에 적는다.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끔 논의를 할 때도 있다. 교장이 30여분 정도 발언하는 동안 교사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회의와 관련 없는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잦다. 교장의 “마칩시다”라고 선언하면 처음처럼 인사 명령이 있고 교사들은 자신의 교실로 돌아가거나 교무실에 남아 일을 한다. 그제야 교사의 웃음을 관찰할 수 있다.
A초등학교의 교직원 회의는 공식적 의례가 실패할 때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집단이 모이고 외부인의 진입은 어렵지만 관심의 초점과 정서 모두 공유되지 않았다. 연구자는 수업처럼 교사 간의 의례도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여러 방향의 시도를 해보았다. 가장 먼저, 가장 공을 들인 시도는 교내교사학습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교육과 학교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면 공동의 관심사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교사들을 한 명씩 찾아가 함께 하자고 권유했다. 동료교사들의 협조로 시작부터 참여자 수가 많았고 모임이 반복될수록 참여자 간의 리듬 합류가 일어났다.27
하지만 공식적 의례, 특히 교직원 회의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회의는 협의를 위한 의례가 아닌 권력 의례로 변질되었고, 명령을 받고 강제 당하는 상황은 참여자를 소외시켜 정서적 에너지를 바닥까지 내렸다. 교사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직접적 감시를 벗어났을 때 소극적으로 저항했다.28 학년 말, 교육과정 반성회가 열렸다. 각 학년부장과 업무부장이 한 해를 돌아보며 잘 된 점과 개선할 점을 발표하였다. 이후에는 교사 간 자유토론이 활발히 진행되어 다양한 비판이 나왔다. 반성회가 끝날 때까지 듣고만 있던 교장은 마지막에 ‘다 하지 말자고 하면 교육이 되겠냐’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교사에게는 명령과 같은 발언이었고, 그 말이 반성회의 마지막이었다.
해가 바뀌어 A초등학교는 음악과 연구학교가 되었다.29 음악 관련 행사와 의례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회의와 행사 준비 시간도 늘었다. 추가된 업무와 빽빽한 일정에 교사들은 빠른 속도로 정서적 에너지를 소진했다. 더불어 학습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줄었다. 각종 행사 준비 및 업무 마감 기한에 바쁜 교사를 보며 모임을 갖자고 제안하기가 어려웠다. 몇 차례 공식적 의례에서 학교 운영에 대한 비판이 나왔지만 변화는 고사하고 권력 의례의 강화로 이어졌다. 그 후로 회의에서 틀에 벗어나는 발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30
위의 사례 이외에도 연구자는 여러 방식으로 교사 간의 의례를 바꾸기 위해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성공적인 자연적 의례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적 의례는 결국 실패했다. 수업을 바꾸는 것은 성공했지만 교직원 회의는 실패한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개인이 다른 상황에 참여할 때 각 의례마다 권력과 수준이 변하기 때문이다. 교사 개인은 교실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교사 집단에서는 그렇지 않다. 둘째, 학교에는 실패한 의례의 상징이더라도 여전히 교사 집단이 상징으로 여기는 것이 많다. 호칭, 직위, 수상 경력, 승진 점수, 학교 평가 결과, 우수 수업, 판서 규칙 등 다양하다. 이를 거스를 경우 위반 행위에 대한 집단적인 분노로 이어진다. 변화를 시도하는 자는 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 쉽지 않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 의례는 긴 기간에 걸쳐 반복된 경우가 많다. 의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 생성되기도 하고 폐기되거나 수정되는데 유독 학교는 변화가 느리다. 백 년 전의 의례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성공하는 의례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교사와 학생들이 학교에서 다양한 상황에 참여한다. 공식적 의례에서 낮아진 정서적 에너지를 자연적 의례에서 높일 수 있을 때까지 참으면서, 자연적 의례에서 만들어진 긍정적 상징을 떠올리며 짧은 열광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학교를 다닌다고 정서적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는데 물질적 보상을 바랄 수도 없다면 개인은 의례에 참여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의미를 잃어버린 의례는 결국 사회적으로 폐기된다. 그러나 참여자 모두가 인지하는 것처럼 공부는, 교육은 긍정적 가치가 내포된 상황이다. 이전에 학교에서 행해진 의례를 관성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례에서 참여자들이 정서적 에너지를 충전하고 소모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하고 바꿔나간다면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Ⅲ. 결론
대한민국에서 의무교육이 시행된 지 어느덧 60여년이 지났다. 지금은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이 법으로 의무화되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9년 동안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오히려 굴레라고 주장하며 거부하거나, 또는 뛰쳐나갈 용기가 없어 머무를 뿐인 이가 많아지는 추세다. 그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학교에 가면 정서적 에너지가 소진된다는 것이다.
교육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하지만 그를 위한 제도의 핵심 기관인 학교가 부정적인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 실정이라면 권리로서의 교육은 사라지고 의무만 남는다. 강요된 의례를 겪으며 정서적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의례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변화의 가능성은 없는지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에 대한 분석은 지엽적으로 구성 요소나 구조만 집중하여 다루는 경향이 있다. 수업 역시 마찬가지다. 수업 의례 분석의 시작을 구조나 개인이 아닌 상황으로 옮기면 수업 내용, 참여자의 관심과 정서의 변화까지도 다룰 수 있음을 알아보았다.
수업 의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참여자들의 정서적 에너지가 어떠한지, 그들이 의례를 어떤 입장에서 참여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미 수업 의례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상징을 제거하거나 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수업 내용의 중심으로 가져오고, 그것을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다는 정서가 공유되어야 한다. 수업 참여자들이 하나의 학습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사회적 삶의 에너지』의 1장에서부터 3장까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학교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콜린스가 저서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모두 적용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4장의 유대 의례의 시장, 5장의 내면화된 상징과 생각의 사회적 과정을 반영하여 학교에서 행해지는 의례를 분석한다면 보다 입체적으로 학교를 드러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여러 종류의 의례를 깊이 분석하지 못한 것도 미련이 남는다. 다른 의례까지 자세히 살펴본다면 학교 전체의 그림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후속 연구가 행해져 학교 분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길 바란다.
- Randall Collins, Interaction Ritual Chains, p. 33. [본문으로]
- Ibid., p. 48. [본문으로]
- Ibid., p. 36. [본문으로]
- http://blog.daum.net/_blog/Ibid.,%20p.%2088. [본문으로]
- Ibid., p. 87. [본문으로]
- Ibid., p. 161. [본문으로]
- Ibid., p. 88. [본문으로]
- Ibid., p. 91. [본문으로]
- Ibid., p. 165. [본문으로]
- Ibid., p. 166. [본문으로]
- Ibid., p. 177. [본문으로]
- Ibid., p. 167. [본문으로]
- Ibid., p. 83. [본문으로]
- http://www.oecdbetterlifeindex.org/countries/korea/ [본문으로]
- A초등학교에는 매일 아침독서활동, 방송 시청 등이 있고, 주별로 애국주회, 1교 1운동 등을 하며, 월별로 이달의 동요 부르기 등의 의례가 있다. [본문으로]
- 교과 또는 창의적 체험학습 시간에 이루어지는 행사는 교육과정 시수 안에서 정해지지만, 학교 특성상 교사와 학생 모두 수업과는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별도로 분류했다. 예로는 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운동회, 평가, 과학의 달 행사 등이 있다. [본문으로]
- 교사 간의 자연적 의례는 근무 시간 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문으로]
- Ibid., p. 91. [본문으로]
- 학교에서 학생들이 밝은 표정으로 행위하고 있을 때를 살펴보면, 공식적 의례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행해지는 자연적 의례에 참여하고 있거나 공식적 의례를 위반할 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교사조차도 공식적 의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긍정적인 표현을 자연적 의례에서는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은 분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나 이 연구에서는 제외하도록 한다. [본문으로]
- 앞으로의 설명은 일반적인 연구 방법을 따르지 않고 연구자의 경험에 의존한 내용이기에 한계가 있음을 언급하고 싶다. [본문으로]
- Ibid., p. 169. - 교육을 통한 진로에 아무 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학교가 강제하는 명령을 받던 청소년들은 기물 파괴와 같은 ‘일탈’ 행위를 저지르는데, 그들은 그 이름으로 복종이 강제되었던 ‘성스러운 대상’을 직접 표적으로 삼는다. [본문으로]
- 이런 점에서 교사 간에 행해지는 공개수업은 한계가 있고 심지어 수업 의례에 대한 분석이 왜곡될 가능성까지 있다. [본문으로]
- 반드시 별칭을 붙일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5-3과 같은 번호라도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학급의 이름은 매우 강력한 상징이라는 것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학급에 대한 느낌이 긍정적이던지 부정적이던지 학급 이름에는 정서적 에너지가 저장된다. 몇 해가 지난 후에 상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에너지의 변화가 생긴다. [본문으로]
-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 글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http://blog.daum.net/sumsame/110)’ 참조 [본문으로]
- 연구자의 블로그(http://blog.daum.net/sumsame)에 자세한 사례가 실려 있다. [본문으로]
- 2012년 9월, A초등학교에 새로운 교장이 부임한 직후 생긴 의례다. [본문으로]
- 2012년 10월 30일, 첫 모임을 가진 후 2013년 4월까지 꾸준히 진행되었다. 교사의 업무량이 늘어나고 학교 분위기가 가라앉아 중단되었다가 2013년 12월에 다시 재개되었다. [본문으로]
- Ibid., p. 166. 권위에 종속된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그 상황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대 뒤에서 상사를 비판하거나 조롱하기, 또는 일상적인 업무 상황에서 대충대충 일하기 등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본문으로]
- 원칙은 교직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거꾸로 진행되었다. 연구학교 선정 먼저 받고 교직원에게 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동의 서명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본문으로]
- 교장 없이 교직원 회의가 진행된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그 상황에서는 교사의 발언 빈도가 늘고 형식에서 벗어난 식의 토론도 이루어졌다. 이는 참여자가 정서적 에너지, 즉 생각하고 의견을 말할 자신감이 없어서 주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문으로]
'나의 이야기 > 책·연수·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OECD 교육지표 (한국) (0) | 2015.11.30 |
---|---|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0) | 2015.08.30 |
변화를 바란다면 기죽지 마라 (0) | 2015.06.01 |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0) | 2015.05.25 |
철학을 가르칠 수 있는가 (0) | 2015.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