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을 하면 하늘이 두 쪽 나는 줄 알았다. 어렸을 때 머리가 아파 조퇴를 했는데 교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조금씩 나아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 행복도 잠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께 크게 혼이 나고 그 길로 다시 학교로 가야 했다. 조퇴를 해도 그러한데 결석은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내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고열에 심한 몸살까지 겹쳤다. 아침에 일어나서 든 생각은 ‘학교에 못 가겠다’가 아니고 ‘학교까지 걸어가기 힘들겠네’ 였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도 상태가 너무 나빴던지 어머니께서는 집을 나서기 전에 나에게 말씀하셨다. “정 힘들면 오늘은 학교 쉬렴.” 그 말을 들어도 학교에 가야한다는 판단이 변하지는 않았다. 그저 어머니께서 많이 걱정하시는구나 싶었다. 등교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잠시 누웠는데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이미 지각이었다. 황급히 집을 나서려다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그 날, 하늘은 갈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왜 못 나왔냐고 물으신 것 말고는 평범한 하루였다. 한 번 선을 넘으니 두 번째는 쉬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킬 때마다 결석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지냈다. 숨 막히는 규제와 모순으로 가득한 학교보다는 집이 편했다. 그 후로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학교를 다녔다. 세상이 정해놓은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익혔다. 나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결과에 책임을 지면 문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와 친하지 않던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 제법 자유롭게 넘나들던 학교가 그럴 수 없는 곳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있다. 교사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가득했다. 혼란스러웠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삶이 달라졌다. 그 모순은 발령 첫 해 내내 나를 괴롭혔다. 한 해가 지나자마자 군대를 들어갔다. 더욱 강한 규율이 나를 옭아맸다. 그 안에서는 당연한 일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긴 세월 동안 통제와 규율에 민감해진 나의 감각은 학교로 복직했을 때 학교라는 곳을 깊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것들을 하나씩 해체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자유롭게 한다면 진정한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교과의 경계를 허물고, 놀이와 공부를 나누지 않았다. 아이들 스스로가 규칙을 만들었고 모든 것은 회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했다. 짧게 서술했기 때문에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선생님을 그만두는 마지막까지 의도한 만큼 잘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생님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나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 어디까지가 교육이고, 어디까지가 통제인가. 여전히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는 못한다. 통제라고 확신이 드는 것은 없애고 교육이라고 믿는 것부터 행할 뿐이다. 사실 학교에서는 이것조차도 버겁다. 그렇기에 학교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환경과 기관과 제도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계획하고 있다. 어쩌면 교육을 통제와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숨겨진 권력의 통제가 아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고 존중하는 합의의 통제가 되기를 바란다.
사족.
글 끝에 있는 '합의의 통제'는 흔히 쓰이는 맥락의 연장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글의 흐름상 통제란 말이 어울려 부득이하게 썼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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