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론과 실천은 구분될 수 있을까? 사회과학은 가치중립적일 수 있을까? 페이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이를 중심으로 실증주의 사회과학과 해석 사회과학을 비판한다.
페이는 객관성을 강조하고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여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는 실증주의자들의 입장에 대해 우선 수단의 문제와 결정은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fact-value dichotomy)에서 사실 측면과 명백하게 동일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책과학자는 모든 가치 판단을 회피하면서 중립적이고 불편부당하게 행동할 수도 없으며, 그의 행동 자체는 그의 제안이 반드시 전제하거나 반영하는 어떤 가치관들을 내포한다. 또한 그는 사회를 통제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천이 따른다는 것을 설명한다. 과학이론을 생성할 때 세상의 복잡한 조건들을 다 포함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통제변인이 포함된다. 과학적 설명의 타당성을 주는 조건들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이론과 실천 간의 관계에 관한 (수단적) 관념이라는 것을 뜻한다. 과학은 현대 생활에서 합리화의 증대라는 맥락에서 제도화되었으며, 이것은 바로 과학이 기술적 통제의 가능성에 대한 약속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실증주의 사회과학의 대안 중 하나인 해석 사회과학은 어떤가? 해석 사회과학은 행위 개념에 내포된 의도, 그리고 그 기준이 되는 사회적 실천, 그 배후의 구성적 의미를 해석하며 사람들의 삶의 부분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발견함으로써 그 삶의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전체의 맥락에서 특정행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바탕으로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는 상호관계의 행위를 다시 소통이 가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이 점에서 해석 사회과학은 실증주의 사회과학과 명확한 차이가 있지만 그것이 설명하고자 하는 행위, 규칙, 신념들을 발생시키는 조건을 고찰할 여유를 두지 않고 행위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유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며 사회 내의 구조적 갈등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을 갖는다.
페이는 해석 모형 역시 사회이론과 사회적 실천 간의 관계에 관한 설명으로서 부적당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해석 사회과학이 유도하는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은 사람들이 ‘상이한 관점’을 쉽게 채택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기 어렵고, 해석 사회과학은 특정 사회의 내재적 지속성을 가정하여 함축적인 보수주의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2. 페이는 제 3의 사회과학의 모형이 사회이론의 본질에 대한 설명에서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에 ‘비판모형(critical model)’이라고 칭한다. 비록 페이가 앞에서 두 가지 모형을 비판했지만 각각의 장점과 함께 새로운 이론을 전개한다. 실증주의 사회과학에서처럼 사회의 어떤 조건을 변화시켜 결과를 변화시키려 하고, 해석 사회과학에서처럼 행위자의 의도와 요구, 사회 질서의 규칙, 구성적 의미를 해석한다. 그렇다면 비판모형이 이전의 모형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실증주의 모형에서 인간이 소외되기 쉬운 것과는 달리 비판모형에서는 이론을 실천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사회 행위자 자신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요청하면서 차별을 둔다. 유사 인과법칙을 수단적으로 적용하지만 지식의 수행자는 현재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태도를 표현하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해석 사회과학의 해석적 범주에서 더 나아가 전문가가 행위자와 상호간에 자연스럽고 비강제적인 표현이 자유롭게 교류되어야 하며 전문가가 연구 대상자가 자신들에 대하여 새로운 상을 갖고 자신들의 경험을 다르게 해석하도록 설득하고 어떤 사회적 조건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전문적 충고의 적절성을 심사숙고하라고 한다.
3. 페이는 제 3의 모형을 통해 이론과 실천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 행위자가 주체가 되지만 세상의 저변을 전문가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면 좀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모형 역시 한계점은 분명하다. 페이 역시 언급하지만 행위자들이 의사 결정과정에서 행하는 역할에서 주체적이 되려면 완벽한 민주적 상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도 정책을 정할 때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토론회를 여는 등 정책대상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하기가 어렵다.
한편, 비판모형에서는 전문가가 행위자를 설득하고 새로운 상을 보여줌을 강조하는데 해석 사회과학에 비판에서와 같이 한 사람의 아이디어는 그의 삶의 방식에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해석은 위협이 되거나 허황되게 보여 행위자의 시각을 바꾸고 변화를 위한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에 따라 비판이론을 바탕으로 실천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속도가 사회구조가 변하는 속도에 못 미칠 여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페이의 주장에 동조하는 바이다. 현대인들은 (특정 사회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개별화되고 소외되면서 삶의 만족도는 점점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의 모순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지금보다 더 나아보이는 새로운 상이 있어야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속담 중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지금껏 우리는 빨리 가기 위해, 하나의 목적을 위한 시도에서 발생한 역사적인 아픔을 수도 없이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벌어지는 추세다. 이제는 더디더라도 함께 가야할 때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도리어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순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며 함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냉철하지만 따스한 사회이론의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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