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이론적 전망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
- 브라이언 페이의 <사회이론과 정치적 실천> 1~3장을 바탕으로
1. 논제의 분석
비평하기에 앞서 논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해보았다. 첫째, 이론적 전망을 무엇이라 해석할 것인가. 전망의 사전적인 의미는 ‘앞날을 헤아려 내다봄. 또는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이다.
사전적인 의미에 나와 있듯이 이 단어에는 본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볼 것인가. 우리가 눈을 통해 감각적인 사물을 보는 것처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 결국 이론적 전망이란 이론을 기준으로 예측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론을 사회이론에 국한시키기로 한다.
둘째, 갖는다는 것을 무엇이라 해석할 것인가. 현존하는 수많은 이론들 중에서 예측하기 위한 기준인 하나의 이론-현실에서 추출한 조건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특정 이론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논점이 생긴다. 어떤 이론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때, 그 판단은 가치중립적인가? 실증주의 사회과학의 입장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페이는 사회과학에서 가치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실증주의자의 이해가 부정확하고 따라서 사회과학에 관한 그의 생각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한다.(p.91)
인간과 파리가 같은 물을 보더라도 그들이 자신이 본 물을 설명한다면 전혀 다른 내용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회과학자가 어떤 이론을 만들 때에는 이미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 이론은 가치중립적일 수 있는가
그렇다면 페이는 어떤 논리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살펴보자. 그는 먼저 과학적인 연구만이 사회체계에 나타나는 사건이나 특징에 대하여 진정으로 객관적인 지식을 제공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사회통제라는 과제에 필요한 힘을 우리가 획득할 수 있다는 실증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에 주목하고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p.26)
첫째로 과학은 객관적인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가. 객관적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과학은 어느 입장도 취하지 않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 실증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정치가의 가치 판단에 따른 결정에 합리적 수단을 제공해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페이는 수단의 문제와 결정은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fact-value dichotomy)에서 사실 측면과 명백하게 동일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p.69)
정책과학자는 모든 가치 판단을 회피하면서 중립적이고 불편부당하게 행동할 수도 없으며, 그의 행동 자체는 그의 제안이 반드시 전제하거나 반영하는 어떤 가치관들을 내포한다.(p.78)
둘째로 사회를 통제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천이 따르지 않는가. 과학이론을 생성할 때 세상의 복잡한 조건들을 다 포함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통제변인이 포함된다. 과학적 설명의 타당성을 주는 조건들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이론과 실천 간의 관계에 관한 (수단적) 관념이라는 것을 뜻한다.(p.59)
과학은 현대 생활에서 합리화의 증대라는 맥락에서 제도화되었으며, 이것은 바로 과학이 기술적 통제의 가능성에 대한 약속과 연관되기 때문이다.(p.61)
3. 실증주의 사회과학에 내재된 가치
그렇다면 실증주의 사회과학에는 어떤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가? 산업사회에서는 정치적·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정한 법칙과 절차에 따라 사회관계를 의식적으로 조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사회관계를 마치 그 자체의 생명을 갖는 과정이고 그에 관련된 행위자의 소망에 관계없이 기능하는 과정인 것처럼 본다. 이 과정에서 물화(making into a thing)-습관적인 활동을 그에 종사하는 행위자의 소망과 관계없이 마치 그 자체가 별도의 존재를 갖고 어떤 고정된 법칙에 따라 작용하는 자연 산물인 것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생긴다.(p.82)
이러한 정책과학적 접근이 정치 질서에 팽배하게 될 때 정치 토론의 빈곤화가 나타나며 기술적 분석 접근이 불가능한 문제들은 비합리적이며 따라서 근본적으로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배-복종의 사회적 관계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에서는 정책과학이 필연적으로 지배층을 지지하게 된다.
4. 실증주의 사회과학을 비판하는 이유
페이가 이런 일반적 인식 안에 담겨있는 이념적 내용을 폭로하는 일은 단순히 철학적 분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런 비판을 ‘우리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길로 안내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칭한다.(p.90)
그가 이 책을 쓴지도 벌써 4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실증주의 사회과학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인식은 사회 전체에 만연하다. 그리고 행위자로서 인간이 하는 활동은 물화되어 인간은 사회를 이루는 구성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소외 현상은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과학의 본질에 대한 논의에 포함된 정치적, 즉 사회적으로 적절한 측면을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페이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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