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간표는 책, 책, 책, 약수, 책, 체육.
어제에 이어 익숙치 않은 과목이 등장하니 아이들이 신기해 했다.
나의 어렸을 적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다.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이 되면서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외롭게 지낼 때,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책.
서점 아저씨와 만화방 아주머니와 귀한 인연을 맺어
마음껏 책을 읽었던 소중한 시간.
그러나 집에 텔레비젼과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10년 정도 책을 멀리했다.
그런 나의 인생을 바꾼 것도 책이었다.
대학 시절 읽은 책 한 권 덕분에
여전히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아직 어리니 인생을 바꾼 책은 없을 거야.
그래도 너희들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흔들거나, 감동시킨 책이 있지 않았니?"
모둠별로 책에 관한 추억을 나누고
가장 반응이 좋은 이야기를 모두가 함께 들었다.
"책은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우리의 머리 속에서 계속 변하죠.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를 함께 바꿔볼까요?"
해설이 있는 역할극을 하기로 했다.
길어야 10줄 정도 해설을 쓰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연기를 하는 방법이다.
(자세한 내용은 서준호 선생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teacher-junho/17031728 를 참조하시길.)
모둠별로 이야기를 정하고 해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하는 방법이라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도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니 곧잘 했다.
역할극을 할 때 주의사항을 말했다.
목소리 크기, 시선과 자세.
아이들은 활발하게 서로 교류하며 연습했다.
3교시에는 처음으로 H가 도움반으로 갔다.
H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다.
그러한 데다가 청결한 편도 아니라 지금껏 따돌림을 당했다.
5학년이 되어서도 대놓고 피하지는 않지만
H와 짝이 되거나 몸이 가까이 할 때
싫은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H가 도움반에 가기를 벼르고 있었는데 오늘 기회가 온 것이다.
"선생님은 H가 지금껏 어떻게 지냈는지 몰라요.
아는 친구가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아이들이 말해준 내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심지어 H가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돈을 준 적도 있다고 했다.
"H는 그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학교 오기 싫었을 것 같아요."
"친구들이 무서웠을 것 같아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H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만 적어보자고 했다.
쪽지에 글을 쓰는 아이들의 표정이 진지했다.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쓴 약속을 읽었다.
혼자 있을 때 같이 놀자고 한다.
혼자 있을 때 말을 걸어준다.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다.
놀리지 않고 도와줄 것이다.
급식 먹을 때 마주보면서(이야기하면서) 먹는다.
쉬는 시간마다 같이 놀자 라고 말하기
하루에 1번 정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다치면 걱정해줄 수 있다.
비난을 안하고 만약 따돌림을 당한다면 방어자가 되겠습니다.
작은 친구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부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피하지 않고, 말을 걸어준다.
"지금 이 자리에 H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기뻐서 울 것 같아요."
"응, 정말 그럴 거야."
이어진 시간은 첫 수학 시간.
아이들에게 수학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그래도 다른 때에 비해 부정적인 경우가 덜한 편이다.
산수와 수학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우리들이 지금껏 많이 한 것은 산수.
그러나 우리는 수학을 배워야 한다.
어제 배운 공부의 원칙을 떠올렸다.
공부할 때 행복할 것.
나중에도 행복할 것.
모두 함께 행복할 것.
칠판에 '틀려도 괜찮아. 소중한 너니까' 라고 적고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문제 푸는 기계가 아니야.
사람이야.
생각하렴.
틀려도 괜찮아.
모를 때는 당연히 틀리는 거야.
처음부터 맞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거니까
틀렸다고 부끄러워하지 마.
옆 친구들과 선생님이 도와줄 거야."
혼자 풀다가 모르는 것은 주변 아이들과 내가 도움을 줬다.
문제를 풀면서도, 다 풀고 나서도 아이들의 표정이 밝았다.
수학이 즐겁다고 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역할극 공연 시간이 됐다.
한 모둠씩 준비한 내용을 최선을 다해 발표했다.
하는 아이도, 보는 아이도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얼굴 분장에, 다양한 소품 준비.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까지.
책에 대해 3시간 동안 무얼 배웠는지 물었다.
"만화책보다 전래동화가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책이 이렇게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어요."
"책을 많이 읽고 싶어요."
하루닫기를 하는데 아이들의 발표가 끊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즐거운 일이 가득해서 할 말이 많았나 보다.
평소에 발표를 잘 하지 않던 아이들까지 가세했다.
이 왁자지껄함이 아이들의 마음을 말해준다.
'저는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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