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TV 호끔만 꺼도 될꺼꽈?"(아버지, TV 잠시 꺼도 될까요?)
그렇다는 대답에 얼른 전원을 끄고 어머니에게도 자리에 앉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무사?"(왜?)
"떠나기 전에 절 드리잰 마씨."(떠나기 전에 절 드리려고요.)
예전에, 아들이 왔는데 절도 안한다며 아버지께서는 화를 내시고
나는 아들이 와도 아버지가 TV만 보고 있는데 어떻게 절을 하냐고 말대꾸한 적도 있었지.
모두 지난 일이다.
앉아계신 부모님 앞에 서서 절을 올리려니 온갖 감정이 뒤섞이며 가슴까지 차올랐다.
"그동안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말이었지만 마지막 즈음에는 목소리가 떨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머니께서는 눈가가 붉어지고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네가 경 살잰 허난 지금까지 얼마나 마음 고생해시크냐. 다 알암쪄."(네가 그렇게 살려니 지금까지 얼마나 마음 고생했겠니. 다 안다.)
이 짧은 말 속에 무수히 많은 뜻이 담겨있기에 그 이상의 대화는 눈으로 할 뿐이었다.
부모님 곁을 떠났을 때가 11살, 벌써 20여년 전이고
제주를 떠나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가 24살, 어느덧 6년이 지났다.
어린 나이부터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상처를 받은 적도 제법 많았다.
부모님께서는 생존을 위해 모질고 억세게 살아야했기에
자식의 감정을 걱정하는 것은 배부른 문제였다.
그러기에 나에게 부모란
사랑의 대상이자 애정을 갈구하는 대상이며,
미워 원망하다가도 다시 연민하는 관계였다.
그런 감정을 이제는 모두 내려놓고
가장 중요한 사실,
부모님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주신 존재이며
그분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점을 배워 잘 자랄 수 있었어요."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두 분 모두 무척 따스했다.
아버지의 딱딱하게 굳은 손은 오래지 않아 내 손을 빠져나갔다.
그냥 보내기에는 아쉬워 다시 한 번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은 무척이나 크고 단단했다.
짐을 챙기고 차에 올라타는데 부모님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아들이 쉬운 길을 두고 어렵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셨을테지.
모두 기우라는 듯 나는 해맑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홀로 운전하는데 지금까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입가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며칠 동안 비를 퍼붓던 하늘은 어느덧 푸른빛으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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