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된 이후 매번 방학 때마다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녔다.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도 만나면서. 이제는 기운이 빠진 건지 연구실과 운동, 집을 반복하며 지내고 있다. 단조로운 리듬을 변주하고 싶었던 걸까. 얼마 전 갑작스레 약속을 하나 잡았다. 잘 모르는 분들에게 냅다 만나자고 했다. 그러니 몇 분이 나오겠다고 하더라. 그렇게 얼렁뚱땅 모이게 되었다.
사람들의 무수한 발걸음이 오고가는 용산에서 네 명이 모여 네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넷 모두 다른 사람이다. 유일한 공통점은 교육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뿐, 나고 자란 곳도 살아온 궤적도 모두 달랐다. 그래, 사실 이건 나의 음모였다. 그러나 치밀하게 짠 계획이 아니라 느낌으로 맞춘 상황일 뿐이다. 내가 원한 것은 그저 각자의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만남이었다. 허술한 음모는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긴 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금세 지나갔다.
의도한 것 같지만 우연으로 만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털어놨다.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 모임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가슴 깊이 묻어둔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러나 모두가 그런 기회를 원한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누군가의 따스한 시선과 함께 어우러진 침묵이다. 여기에서는 괜찮겠구나 싶을 때, 해묵은 감정과 생각이 절로 밖으로 나온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그럴 수 있었다는 경험만으로도 '만남'에 대한 인식이 변한다.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요약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한지라 그 부분은 건빵쌤께 넘긴다. 후기의 달인이시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싶다. 그렇다면 내가 남기고 싶은 기억은 무얼까. 건빵쌤과 자민쌤의 대화로 추상할 수 있겠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자민쌤: 선생님은 대안학교에서 근무하시잖아요, 그곳에서는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뭐예요?
건빵쌤: 서로 다르다는 거요. 우리 학교에 선생님이 세 명인데 모두가 같은 사람이고 같은 방식으로 가르친다면, 맞지 않는 학생은 떨어져나가게 되잖아요. 저와는 맞지 않더라도 다른 분과 맞는다면 그 학생이 계속 머물 수 있죠.
건빵쌤의 후기(https://brunch.co.kr/@gunbbang/168#_=_)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전체 이야기의 핵심은 개인에서 집단-시스템으로, 닫힌 시공간에서 열린 맥락으로 관점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름'과 '이어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우리는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살아왔다. 여전히 다름이 틀림이 되고,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는 사회다. 그렇다고 손 놓고 세상이 변하기를 바랄 수만도 없다. 아기가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걸음마를 떼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다름'과 '이어짐'을 이해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 과정이 '만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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