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노력해보자고 했다.
자율적으로 잘 지켜지는 점도 많았지만
여전히 잘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어제 아이들과
모든 것을 자율에 맡기느냐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띠느냐 논의 끝에
일주일의 효력을 지닌 규칙을 정했다.
첫 번째, 휴대폰과 카드 놀이를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청소를 하지 않는 경우 남아서 한다.
세 번째, 문구점에서 파는 (불량)간식은 먹지 않는다.
오늘 점심시간이 끝난 후 아이들에게
하루 동안 지내보니 어떠냐고 물어봤다.
아이들은 만족한다며 좋아했다.
같이 놀자고 말했을 때 친구가 게임한다며 거절하는 경우도 사라지고,
함께 즐겁게 뛰어놀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지루했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고,
청소와 간식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반응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규칙을 통해 아이들을 통제할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3월부터)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그리고 권리와 책임, 자율을 강조하면서
규칙을 만든 것은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아니냐고.
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어떤 것을 행함에 있어
다른 이들의 동의를 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다.
그리고 압박감에 의하지 않고,
진정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것이 필요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경험과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
처음부터 잘 짜인 규칙 안에서 아이들이 생활할 수도 있지만,
그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의 위험이 존재한다.
첫째, 해당 규칙 또는 가치가 왜 중요한지 깊게 생각할 기회가 박탈된다.
둘째, 만들어진 규칙을 통해 행복함을 느낄 때, 그것만이 옳은 방법이라는 오류를 가질 수 있다.
(다만 한 사람이 한 공동체에서 긴 시간 지낼 수 있다면 이 위험성은 해결할 수 있다.)
권리와 책임, 자율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일이 평화롭게 진행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르고 그에 따른 판단도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청소를 할 때,
어떤 이는 적당히 치워도 된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먼지 하나 없어야 청소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집단과 공동체마다 규칙이 있는 것이다.
규칙은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해야 한다.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보다 중요한 것이
구성원들이 규칙은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자신들이 규칙을 직접 만들고,
상황에 따라 바꾸는 경험을 해봤을 때
그 신념은 마음 깊숙이 자리잡을 수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계속 해서 반복하는 말 중에 하나는
'싫은 것은 바꿔라' 이다.
비판을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직접 행동을 통해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상은 행함으로써 바뀐다.
내 생각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 행동은 아이들이 크게 느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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