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06 준비물 안 챙겨 왔니?
20140206 준비물 안 챙겨 왔니?
1교시 사회 시간.
"애들아, 준비물 챙겨왔지?"
사회책을 펴놓은 아이들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서로 마주 봤다.
"준비물이 있었어요?"
"준비물 안 챙겨 왔니?"
웅성웅성.
"아니, 준비물을 안 챙겨 오면 어떡하니?
당연히 눈이 오면 장갑을 챙겨 와야지!"
그 말에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깜짝 놀랐잖아요!"
"아, 오늘 장갑 챙기려고 했는데."
투덜거리면서도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나간다.
내려가면서 OO이가 나에게 말했다.
"전 선생님이 이렇게 할 줄 알았어요.
엄마도 장갑 챙겨 가라고 하셨어요."
모두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나보다 고단수인 애들이 있다.
신나게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 위에서 넘어뜨리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실컷 뛰어다녔더니 추운데도 땀이 났다.
교실로 돌아와 차가워진 손발을 녹이는데
AA이가 BB이와 다투다
짝 소리가 날 정도로 뺨을 때렸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아이들과 함께 회의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방학 중에 온라인에서 AA이와 싸웠던 아이들까지
그 때의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그럼에도 AA이는 아이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AA이는 지난 해에 비해 상태가 여러 모로 많이 좋아졌음에도
공감능력은 이제야 계발되고 있는 아이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그동안이라도 AA이가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AA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점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은 기분이 아무리 나빠도 금방 풀리니까
다른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 아이다.
그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직접 감정을 털어놓게 하였다.
필요할 땐 내가 중간에서 이해를 도왔다.
긴 대화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AA이에게 물어봤다.
"대화하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어?"
"친구들이 다 저를 째려보는 것 같았어요."
"아, 그럼 정말 속상했겠다. 또 다른 생각은?"
"CC이가 우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그래, 이 정도만 느껴도 많이 성장한 거다.
하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3월이 걱정이다.
서둘러 AA이 어머님과 통화를 했는데
마침 어머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관과 연계하기로 결정했다.
나를 떠나서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