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학교에 상처받은 아이가 학교에게'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글을 쓴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한 주에 한 편은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건만 아직도 첫 번째 글 그대로다. 연재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어려운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생 때의 경험과 교사로서의 생각을 풀어쓰면 되니까. 그러나 다음 편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가장 먼저 경험한 어려움은 내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확하지 않아도 누가 아는 것도 아닌데 그냥 쓰면 되지' 라는 생각은 나를 납득시킬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전화하여 여쭤보고 그것도 확신할 수 없어 형에게도 확인을 했다. (조만간 누나들과도 길게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졸지에 가족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셈이 되었다. 각자의 기억을 맞추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서로 나누지 못했던 주제로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니 관계가 변함을 느꼈다. 과거 각자의 속사정을 풀어놓으며 깔깔 웃기도 했다. 어려웠던 시절도 지나니 추억이었다.
그렇게 고증 작업을 한 후에도 글쓰기를 시작할 수 없었다. 예전의 기억을 꺼내는 과정이 그리 편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밑바닥에 눌러놓은 감정이 자꾸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정말 감당할 수 있겠어?' 그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학교에서 겪은 일 만으로는 내 심정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한데. 집안 이야기를 얼마나 해야 하는 거지? 집 형편이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위로받기 위해 이런 글을 쓰나. 부모님께서 나를 그렇게 대했던 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건데 내가 들춰내는 건가. 이 정도의 아픔이 없는 사람도 있나. 이런 질문들에 어느새 글에 대한 의욕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나는 왜 예전의 나를 꺼내려하는 걸까. 아마도 지금의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이 왜 나의 삶의 중심에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일 테다. 무엇 때문에 교육을 바꾸겠다고 다짐하고 스스로를 딱달하는지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나누며 공감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생각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봐 걱정된다. 그보다 깊이 들어가면 나의 속살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두렵다. 뭐가 어때 하며 시작하려다가도 그런 나의 모습을 감추려 글을 꾸며 쓸까 봐 망설여진다.
한편으로는 이런 두려움을 뛰어넘고 싶기도 하다. 스스로를 억누르며 살아가는 것을 알기에 그 빗장을 시원하게 부수고 싶다는 마음도 간절하다. 그 시작이 이번 연재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역사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내 삶을 돌이켜보며 한 글자씩 기록하다 보면 보이는 게 달라지리라.
다시,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