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블라주 2015. 9. 19. 12:20

당신은 매일 세상을 보고, 만진다. 

당신이 경험하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 당신에게 누군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하나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그저 웃어넘길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말에 귀기울여본다면, 당신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호사를 누리게 될 지도 모른다(호사가 될지 악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말을 잇는다.

세상은 하나이긴 한데 둘이라고.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그래도 이왕 들어본 김에 더 들어보자. 

우리가 어떤 것을 할 때 볼 수 있는 모습은 같은 행동이더라도 사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향한 것일 때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한 것일 때도 있다고. 

여기까지 들으면 더 이상 참을 필요는 없겠다. 

돌아서는데 그가 혼자 중얼거린다.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꿍꿍이셈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당신의 몸은 그의 옆에 가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들어나 보자.


그는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나는 내 눈에 비친 무언가를 인식하는 것, 또 하나는 ‘마음’으로 ‘보는 것’.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 비친 세상만 인식하지만 가끔씩 ‘다른 세상’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두 세상은 생각을 통해 구분은 가능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분리되지는 않은 하나로 존재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회복한다면 두 세상이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도 그 자체로 좋다고 한다. 

또 속은 것 같지만 몇 가지만 물어보자. 

눈으로 안 보인다는데 어떻게 그 세상을 알아요? 

‘마음’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외의 방법으로는 드러낼 수 없다고 답변이 돌아온다. 

말이 안 통하는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데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우다가 이내 곤란한 표정이 역력하다. 


‘공부’해야 해요. 

그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데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공부가 아니에요.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공부란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연습이라고. 

꾸준히 연습하다가 문득 눈이 잠깐 뜨일 때마다 보게 되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더욱 노력하게 되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네 평소 행동도 달라진다고. 

항상 ‘세상’에 취하게 될 때가, ‘그 자체로 좋은 것’과 하나인 상태가 되는 거라고 한다. 

아름다움이라. 

그거 좋지. 

그럼 공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또 침묵이 흐른다.


이론……. 

그의 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인사를 보낸다. 

안녕히 계세요. 

머리 아픈 소리나 지껄이려고 하는 거구나.

집에 돌아와 다리를 쭉 펴고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렇게 편한 삶이면 됐지. 

굳이 공부를 해야 하나. 

방바닥에서 뒹굴며 쉬고 있는데 그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갑자기 편한 삶은 정말 좋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와 헤어진 장소로 가니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다. 

뭐해요? 

그가 씨익 웃으며 답한다. 

공부요.


그의 웃음에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저런 표정을 짓고 싶다. 

어떻게 공부하는지 좀 알려줘요. 

그게 설명하기 쉬운 건 아닌데, 이 책을 읽어보고, 요렇게 생각해보고요, 산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보고……. 

이 많은 걸 언제 다 해요. 

다른 세상을 보는 게 쉬운 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래도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하면 돼요. 

에이, 이게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공부하며 살다가 문득문득 보이는 광경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할 거예요. 

그 모습은 무척이나 경이로워서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정도니까요. 

쳇, 속는 셈치고 해봐야지. 

저 사실 끈기 하나는 끝내줍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니까요? 

좋은 벗을 초대하게 되어 무척 기쁘네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저요? 

누군가가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