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유럽에서 살다

<19일차> 문을 열어두는 마을

아상블라주 2015. 7. 4. 18:14

모두가 피곤했는지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늘어지게 잠을 잤다.

모두가 잠든 사이 일어나 씻고 여행기를 정리했다.

와이파이가 꺼져 있어서 테더링으로 인터넷을 했다.

독일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제처럼 가벼운 아침 식사를 했다.

Nicolai가 먼 길 떠날 사람이니 마저 다 먹으라며 큰 요구르트 통을 나에게 건넸다.

그래, 많이 먹어야지.



아들은 집에 남아 있겠다고 해서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Nicolai와 딸이 나를 터미널까지 바래다주었다.

독일에서 아이들이 사진 찍지 말라고 한 이후로 인물 사진은 잘 찍지 않는 편인데 딸과는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Nicolai에게 물으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꼭 끌어안아주는 그녀가 고맙다.

웃으며 안녕!

오후 1:43  Map


Vejle를 거쳐 Silkeborg까지 갔다.

버스는 느리고 승차감도 별로다. 

하지만 구석구석의 풍경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오후 3:47  Map


기차역에 도착해 앉아있으니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청년들이 돌아다녔다.

내 호스트는 아니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Lasse와 Alex, 그리고 그의 서퍼들까지 다섯이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곧장 Lasse의 집으로 이동했다.


Lasse와 Alex는 막역한 친구다.

Alex가 Lasse를 소개시켜줘 그의 집에서는 하루만 묵기로 했다.

이미 나 말고도 그의 여자친구와 Deni라는 인도네시아인이 그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집에 있는 거 하나하나 알려주며 맘껏 쓰라고 하고는 훌쩍 떠났다.

이런 걸 쿨하다고 하는건가.

오후 5:19  Map


Deni는 예전에 인도네시아에서 2주 정도 Lasse와 Alex를 호스팅했다고 했다.

그 인연으로 이 곳에 놀러온 것이라고 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인연이 꾸준히 이어지는구나.


너무 배가 고파 빵과 바나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웠는데 세 시간이 지났다.

한 시간만 쉬다 낚시로 가기로 했건만 내가 피곤해보였던지 Deni가 깨우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배려심이 고맙다.

오후 8:48  Map


시간은 늦었지만 해는 여전히 높다.

낚시 장비를 들고 Lasse의 집 옆 호수로 갔다.

Deni가 문을 잠그지 않길래 괜찮냐고 물었더니 Lasse가 잠그지 말라고 했다.

정말 괜찮을까.



이런 곳이 집 옆이라니.

매일 와도 질리지 않겠다.


Deni가 장비 준비를 도와줬다.

능숙해 보이길래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해봤을까 했지만 어제 Lasse에게 처음 배웠단다.





하늘에 붉은 빛이 어우러지니 더욱 아름다웠다.


한 시간 정도 있었지만 물고기가 입질조차 하지 않았다.

맨 처음 Deni가 낚싯줄을 드리우자마자 엄청 큰 물고기가 얌체같이 떡밥만 물고 간 것이 다였다.

내일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Lasse와 그의 여자친구가 돌아왔다.

피곤할 텐데 우리보고 얼른 시내 구경을 가자고 했다.


나가면서 Lasse에게 문을 잠그지 않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이 곳은 덴마크인들만 살고 있어 도둑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 제주의 정낭이 생각났다.

지금도 이렇게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곳이 있다니.



Silkeborg는 작은 마을이라 관광객도 없고 딱히 볼 것도 없다.

짧은 시간만 불을 밝히는 조명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Lasse가 가을에 Alex와 함께 북한에 간다고 했다. 

덴마크의 한 관광사가 매년 50명 정도를 북한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2017년에 아시아 일주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때 북한을 갈 수 없으니 미리 가는 거라고.

그러면서 북한에 대해 물어봤다.

내가 아는 한에서 대답해줬는데 예민한 내용을 물어봐서 미안하다고 했다.

전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여전히 미안한 표정이었다.

우리 나라의 상황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비치는 거겠지.


Lasse가 덴마크 사탕이라며 먹어보라고 했다.

입에 넣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짜고 시고 쓰고.

이것을 무슨 맛으로 먹지.

씹지도 못하고 입에 가만히 두고 있으니 Lasse와 그의 여자친구가 낄낄 웃었다.

미안하다며 뱉어도 된다고 하니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얼른 달려가 쓰레기통에 뱉었다.

Lasse가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Licorice는 종류가 다양한데 그 중에서 가장 강한 맛을 나에게 준 거였다.

사탕의 이름은 Salt Bober. 잊지 않겠다.


그렇게 함께 웃고 장난치며 밤이 깊어졌다.

피곤한 Lasse와 여자친구는 먼저 잠에 들고 나와 Deni는 거실에서 각자 할 일을 했다.


밤 10시가 되니 Deni가 한 방향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고 그제서야 먹을 것을 찾았다.

그는 이슬람 신자라 라마단 기간을 성실히 지킨다.

하지만 북유럽의 여름은 해가 짧아 밤 10시부터 새벽 세 시까지 밖에 못 먹는다고.

그 외의 시간에는 물조차 마시지 못한다.

어떻게 그렇게 살지?

믿음의 힘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