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차> 평온한 일상을 즐기다
늦게까지 늘어지게 잠을 잤다.
전날 Ole가 나는 침대에서 자게 하고 자신은 부엌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에서 잠을 잤다.
자신은 늦게까지 여자친구와 통화할 거라 내 휴식을 방해하기가 그렇다고 했다.
미안했지만 너무 피곤했던지라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는 동안 부스럭 거리는 이도 없고,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이 곳은 내가 푹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여덟 시가 좀 넘어 일어났다.
Ole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인터넷이 무척 빠르다.
업로드와 다운로드 모두.
미뤄둔 여행기를 쓰기 좋은 환경이다.
오후에는 글이나 써야겠다.
Ole가 일어나자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매.우.여.유.있.게.
한참을 수다 떨다가 함부르크의 페리로 구경시켜준다며 집을 나섰다.
두 겹의 외투를 입은 나와 달리 Ole는 얇은 스웨터와 재킷만 입었다.
그다지 춥지 않다고 했다.
내가 유독 추위를 타는 편이긴 하지만 대단해보였다.
거리에는 심지어 짧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은 기후에 적응하나보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더욱 추웠다.
Ole도 슬슬 쌀쌀함을 느끼나보다.
바람이 강해 페리의 외부에 있지 못하고 실내로 들어갔다.
육지 안으로 깊숙히 들어온 바다임에도 파도가 엄청났다.
Ole도 이런 경험이 없는지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심할 때는 몇 분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몰아치는 파도 사이로 간간히 거대한 도크와 배, 건물을 볼 수 있었다.
항구도시라 그런지 배 모양의 건물도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수함 한 척이 떠 있었다.
짧은 관광을 마치고 Ole의 대학교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마음에 드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한 번에 계산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그의 대학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의 대학 등록금 일 년치가 경차 하나 값이라고 하자 입을 떡 벌린다.
독일은 한 학기에 40~70만원 정도를 내는데 그조차도 등록금이라기 보다는 각종 편의시설 이용 비용이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대학권내 대중교통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니.
기숙사나 주변 숙소, 구내 식당 등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정부기관이 개입한다고 했다.
돈 걱정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는 않겠구나.
Ole가 출근한 뒤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편안히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이게 얼마만의 작업 시간인가.
부담감도 있지만 즐겁기도 하다.
오후 6:07 Map
독일의 복지는 우리보다 훌륭하다.
위 공공기관(고용지원청)은 노동과 관련된 업무를 맡는데
일자리를 찾지 못할 때 도와주고, 직업을 갖지 못할 때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곳이다.
독일에 와서 오히려 다른 나라 음식을 자주 먹는다.
독일인 스스로도 독일 전통 음식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민자가 늘면서 관련 식당이 늘어나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이름은 doner kase.
터키 음식이다.
독일에는 터키인도 많고 터키식 식당도 많다.
나중에 왜 그런지 물어봐야겠다.
오후 8:02 Map
밤 늦게 Ole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신세 한탄을 했다.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알아보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했지만 무척이나 황당하긴 했나 보다.
한 변호사 말고는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니 아마도 그 사람과 관련되지 않을까 그는 추측했다.
이런.
그가 원하는 대로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