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야기/행복한 삶

두근두근 첫만남?

아상블라주 2011. 3. 6. 17:14




2011년 03월 02일 수요일


새로운 시작의 날이다. 오늘은 2011 학년도의 첫 번째 날. 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위해 어제는 회식이 끝난 뒤에도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첫만남을 준비했다. 회식이 있기 전 학년-업무 분장 발표 때 받은 충격(6학년 담임에 정보, 과학 담당)은 가시지 않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을 만난다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웬걸. 막상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은 1시간이 채 안됐다. 아이들에게 Surprise~ 하기 위해 7시 반에 출근했는데 입학식 준비에 끌려가 한참을 있었다. 그 후 아이들에게 간단한 내 소개를 하고 입학식 진행에 대해 설명했다. 입학식 참여가 끝난 후에는 무서운(!) 정리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학교는 실내행사를 진행할 만한 공간이 없어 1, 2학년 교실 사이에 있는 이동형 벽을 분리해 장소를 확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실 집기들을 다 치워야 하고. 그 때문에 한 번 행사를 하려면 설치에 약 2시간, 정리에 약 2시간이 걸린다. 정리까지 끝내고 녹초가 된 몸으로 아이들과 30분 정도를 함께했다. 그 시간도 내일 준비물과 시간 계획을 알려주니 끝이 나더라.


오후에는 계속 Neis 업무 + 다른 교사 도와주기. 그 후 교직원 회의. 이어 새로운 교직원 환영식.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내가 처한 환경은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나. 예전처럼 후회하는 것은 다시는 하기 싫은걸. 기죽지 말고 힘내자! 내일이 첫만남이라 생각해야지. 아침에 아이들 이름 다 외우기!



2011년 03월 03일 목요일


기분이 너무 좋다. 대청소 시간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수업이 내 생각대로 진행이 됐냐고? 전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아이들에게 전달했고, 아이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또 처음으로 한 상담활동, 학부모 면담 모두 기대 이상으로 잘됐다. 이렇게 교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한 하루가 어찌나 소중한지. 대신 행정업무는 일과시간 후로 다 미뤘지만.


그.러.나. 아직 많이 부족하다. 오늘도 내일의 일과를 정하기만 했을 뿐이다. 여유를 가지되 열심히 하자. 계획을 가지고 성실하게!



2011년 03월 04일 금요일


체했다. 그것도 제대로. 어제 먹은 돼지고기가 문제였던 걸까, 3일 연속 회식이 문제였던 걸까. 난 술 먹다 체하면 다음날 정신을 못 차리는 편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버틸 만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아이들과의 첫 주를 망치기 싫어 꾹 참았다.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아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20분 정도 쉬었다. 그러니 5, 6교시는 할 만 했다.


거의 실신 상태인 채로 업무를 처리하다 5시가 되자마자 퇴근을 했다. 3월 내내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꿀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꿈을 이루게 됐구나. 잤다 일어나보니 8시. 여전히 속도 더부룩해 몸도 움직일 겸 내일 활동 연습을 하기 위해 다시 학교에 나갔다. 처음으로 해보는 집단 치유 활동. 잘될 거란 믿음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더 문제가 커지지 않기를.



2011년 03월 06일 토요일


두둥~! 너무 떨리는 날이었다. 어제 아이들에게 학교 다니면서 겪었던 가장 슬펐거나 가슴 아팠던 경험을 적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수업시간에 그 내용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활동을 했다. 정말 많이 걱정됐다. 아이들이 장난 투로 하면 어쩌나, 자신의 상처가 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지면 더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그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위해 분위기를 잡기 위한 배경음악을 준비하고 어제부터 아이들에게 이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리고 활동의 시작 전 진심을 담아 아이들에게 고개 숙여 부탁했다. 잘 참여해달라고, 활발함이 너희들의 장점인 건 알지만 이번 활동만큼은 진지해달라고.


활동의 시작은 나의 경험담이었다. 내가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상처를 받았던 이야기.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 때 내 감정은 어땠을까를 발표해보게 했다. 다들 짧게 표현했지만 그 때의 내 마음에 공감하려 노력했다. 이 분위기가 잘 이어져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발표하고 싶은 아이부터 발표하게 했다. 끝까지 발표를 하지 않은 3명의 여학생(우리 학년에는 여학생이 3명밖에 없다)을 제외하고는 다 자신의 상처를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친구들은 그 당시 그의 감정에 공감해주었다.


다행히 내가 생각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쉬웠던 점은 공통된 경험을 말한 친구가 많았다는 것과 아이들이 상대방의 감정에 반응을 제대로 못한 것, 그리고 교사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 여자아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처음치고는 만족할 만하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조급함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이어서 간단한 교실놀이를 했다. 활동을 진행하면서 문득 ‘어찌 보면 같이 어울려 잘 놀기만 해도 많은 아픔들이 사라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역시 어려운 일일까?


이번 주 내내 나 혼자만 말을 많이 해서 나도 힘들고 아이들도 힘들었다. 다음 주부터는 같이 어울리며 학교 생활에 푹 빠져보자.